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미주 탐방기

여행 이야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7. 28. 14:00

본문

[들어가기]

북아메리카 대륙의 역사는 아시아에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는 인디언으로부터 시작된다. 간빙기의 마지막 시대인 2,3만 년 전쯤 동부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는 육교였던 지금의 베링 해협을 건너간 석기시대의 수렵인들이 북아메리카의 역사를 열었으리라. 15세기 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우연히 발견하기 전까지 북아메리카는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일으켰던 중앙아메리카에 비해 상당히 낙후된 변두리 지역에 불과했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 열강들은 신대륙 발견의 추진력이 되었던 동방으로의 항로 개척을 위해 북아메리카를 점령하여 식민지 개발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16세기 초에는 스페인이 맨 처음 북아메리카에 발을 들여놓았고 그 후 17세기 초에는 프랑스와 영국이 뒤를 이어 정착촌을 세웠다. 네덜란드와 스웨덴도 짧은 시기 동안 식민촌을 세웠고 18세기 말에는 러시아가 알래스카에 정착했다. 프랑스를 물리치고 북아메리카 북부 지역을 장악했던 영국을 축출한 동부 13개 주는 1783년 아메리카 합중국을 탄생시켰고, 캐나다는 1926년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1789년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고, 1803년에는 프랑스령이었던 루이지애나(당시 면적은 한반도 열 배 정도인 214만 제곱킬로미터)를 나폴레옹 1세로부터 1,500만 달러를 주고 매입했으며, 1848년에는 멕시코의 일부였던 캘리포니아 지역을 거의 강탈하다시피 점령하여 엄청난 영토 확장을 꾀했다. 그 후 1867년에 단돈 720만 달러를 주고 러시아로부터 남한 면적의 17배에 달하는 153만 제곱킬로미터의 알래스카를 손에 넣었으며, 1900년에는 하와이를 미국 영토로 편입하여 마지막 50번째 주를 만들면서 미국이라는 대국의 영토가 마무리된다.

사실 1848년에는 쿠바마저 1억 달러에 매입하려고 시도했으나 남북 전쟁의 발발로 무산되었다고 하니 미국의 영토 욕심은 끝이 없었고, 이러한 영토 확장은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흑역사를 남기는 비극이 아니었던가 한다. 영토 확장 이후 미국은 1861년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공업 국가로서 기반을 닦으며 인구 증가와 산업 발전을 통해 서서히 강대국의 면모를 갖추다가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으로 우뚝 서기 시작한다.

한편으로 미국 역사의 또 하나의 잔혹사인 흑인 노예의 유래는 식민지 초기인 1619년부터 시작된다. 1640년의 법원 판결로 흑인 하인들은 평생 노예로 살아갈 운명을 맞게 되고, 1662년에는 버지니아주법으로 노예 어머니의 자녀는 노예가 될 수밖에 없으며 흑인의 피가 한 방울이라도 섞이면 흑인이라고 간주하게 된다. 심지어 1680년부터 노예무역이 금지되는 1808년까지 삼각 무역을 통해 미국으로 팔려 온 4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 흑인들은 1863년 노예 해방이 선언되기 전까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노예의 삶을 살게 된다.

노예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해도 흑인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여 엄청난 우여곡절(1954년 브라운 판결 등)을 거친 후인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완전한 흑백 통합이 이루어진다. 오늘날 흑인의 인구 비율이 13%를 넘기며 19%에 육박하는 히스패닉 인구 다음으로 많고, 아시아계(5%)와 기타(4%)를 제외하면 순수 백인 비율이 59%까지 줄어들고 있어 다양한 인종 간의 갈등은 앞으로 미국 사회의 새로운 이슈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세계 자본주의 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은 불과 400여 년의 역사(그 이전의 역사는 거의 말살되었다고 봄)를 지닌 신생국으로 어찌 보면 아직 큰 시련을 겪지 않은 청년기의 나라라 할 수 있다. 오로지 번영만을 구가하는 신대륙의 힘을 믿고 세계를 호령하던 미국을 처음 밟아 본 것은 IMF 경제 위기가 오기 직전인 1997년이었다. 당시 교원단체 소속 회원들의 해외 연수로 미주 동부 지역인 뉴욕과 워싱턴 그리고 캐나다의 몬트리올, 오타와, 토론토를 다녀왔다. 그다음으로 미주를 다시 밟은 것은 2013년 때로 미주 서부 지역인 로스앤젤레스와 캐나다의 밴쿠버를 둘러보았다.

1997년의 뉴욕 맨해튼과 2013년의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

[뉴욕]

1997년 6월 3일 대구공항을 출발하여 김포공항에서 국제선으로 갈아타서 앵커리지를 경유한 후 현지시간 밤 10시에 뉴욕의 뉴왁공항에 도착했다. 첫 해외여행이라 거의 17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는 긴장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자서 시차에 따른 난조로 뉴욕의 첫인상은 그리 밝지 못했다. 바로 뉴저지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다음 날 아침 허드슨강의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 맨해튼섬으로 들어갔다. 맨 먼저 가본 곳이 1968년의 대규모 인종 폭동 후 흑인 빈민가로 전락한 할렘가였다.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치면서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1724년에 개교한 콜럼비아 대학과 1892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아직도 공사 중이라는 성요한 성당을 둘러보고 센트럴 파크를 지나 워싱턴 광장에 들어섰다.

점심을 먹은 후에 UN본부로 향하여 국제 정치의 중심지를 둘러보고 록펠러 센터에도 잠깐 들렀다가 배를 타고 허드슨강의 자유의 섬으로 건너가 미국의 상징이 된 자유의 여신상과 대면했다. 미국 독립 100주년에 맞추어 프랑스의 조각가 바르톨리가 21년에 걸쳐 자기 어머니를 모델로 삼아 제작했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업적이 아닌가 한다. 섬에서 바라보는 맨해튼의 빌딩숲은 낮에 보아도 대단한 장관을 이루었다. 뉴욕에서의 둘째 날은 미국을 처음 밟은 청교도 102명을 기념하기 위해 GM에서 1년 40일 만에 준공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찾았다. 물론 지금은 9.11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당시에는 110층이라 엠파이어 스테이크 빌딩이 최고층의 빌딩은 아니었지만 지하가 1층밖에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뉴욕에서의 셋째 날은 4층 건물에 35개 전시장을 갖춘 엄청난 규모의 자연사 박물관을 둘러보았는데, 지구의 역사에 따른 생명체의 모습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했을 뿐만 아니라 거대한 공룡의 골격과 30미터에 달하는 고래 표본도 굉장한 볼거리였다. 

1997년 자유의 여신상과 맨해튼

[워싱턴]

1997년 6월 6일 3박 4일의 뉴욕 일정을 마치고 워싱턴으로 가기 위해 뉴욕의 케네디 공항으로 향했다. 점심 무렵 워싱턴 달라스 공항에 도착하여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 첫 발을 내디뎠다. 국회의사당 건물 높이 이상은 지을 수 없는 워싱턴이라 건물들은 모두 나지막했다. 한국 참전 용사들의 기념비와 동상이 있는 포토맥 공원을 찾았는데 '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링컨 기념관에 들러서 59세에 사망한 것을 기념하는 59계단을 올라보니 높이 169미터의 조지 워싱턴 기념탑과 국회의사당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다음 날 아침에는 미국 대통령 집무실인 백악관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16년째 백악관 앞에서 반핵 시위를 하고 있다는 50대 여인은 '한국은 곧 통일될 것이다.'라는 피킷도 들고 있어 1달러씩 기부했다.

알링턴 국립묘지를 방문하여 존 F 케네디와 그의 가족들의 묘지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버스를 타고 루레이 동굴로 가서 석순과 종유석이 아름다운 동굴을 탐방하고 인근의 자동차 박물관까지 구경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2박 3일간의 워싱턴 일정 마지막 날에는 13개의 개별 박물관으로 구성된 스미소니언 박물관으로 가서, 1억 2천만 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국립 자연사 박물관과 유태인 학살에 관한 유품들을 전시한 홀로코스트 기념 박물관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23개의 갤러리에 수십 대의 항공 관련 기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도 구경했다. 오후에는 캐나다로 넘어가기 위해 워싱턴 내셔널 공항으로 가서 몬트리올행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갔다.

1997년의 미국회의사당과 알링턴 국립묘지의 존 F 케네디 묘지

[몬트리올/오타와/토론토]

1997년 6월 9일 몬트리올에서의 첫날은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알려진 노트르담 성당과 기적의 성당으로 유명한 성요셉 성당을 둘러보고, 1976년 양정모 레슬링 선수가 대한민국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몬트리올 하계 올림픽 경기장을 찾았다. 몬트리올에서 2박을 하고 오타와로 넘어가서 중세의 고성과 같은 고풍스러운 국회의사당을 둘러보고 현대 미술관과 문명사 박물관을 견문한 후 오대호의 하나인 온타리오호 호반에 위치한 킹스턴으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를 이루는 세인트로렌스강에 산재한 천 개의 섬을 보러 유람선을 타고 관광을 나섰다. 실제 섬의 개수는 1,8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우리나라의 한려수도와 같았다.

한 시간 동안의 섬 관광을 마치고 캐나다 일정의 마지막 도시인 토론토로 출발했다. 토론토에서 1박을 하고 나서 드디어 캐나다 쪽 나이아가라 폭포 관광을 나섰다. 미국 폭포보다 너비가 훨씬 긴 캐나다 폭포는 낙차가 48미터로 이리호의 물이 폭포를 이루며 온타리오호로 흘러 들어간다. 지하 50미터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비닐 우의를 덮어쓴 채 폭포 바로 밑까지 갔다 오는 유람선에 올랐다. 우렁찬 물줄기와 휘몰아치는 물안개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대자연의 위엄을 새삼 느끼는 하루였다. 토론토로 돌아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토론토 공항에서 뉴욕행 비행기에 탑승하여 뉴왁 공항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웠다. 뉴욕에서 앵커리지를 거쳐 김포공항까지의 긴 여정을 거쳐 새벽에 그리운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1997년의 몬트리올 성요셉 성당과 나이아가라 폭포

[로스앤젤레스]

2013년 6월 9일 오후 3시에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하여 현지 시간 6월 9일 오전 10시 반경에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점심을 먹고 영화 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를 돌아본 후 리버사이드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었다. 다음 날 오전에 주립 대학과 후루파 교육청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팜스프링스 데저트 아웃렛으로 이동해서 쇼핑을 즐겼다. 로스앤젤레스 3일차에는 리버사이드 교육청과 로스앤젤레스 한국교육원을 방문하고 도산 안창호 선생 기념 동상을 둘러본 후 미국을 동서로 횡단하는 총연장 3,940킬로미터의 66번 국도의 서쪽 끝인 산타모니카로 가서 해변의 풍광을 만끽했다. 4일차에는 오전에 로스앤젤레스 3가 초등학교를 견학하고 오후에는 류현진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다저스 구장을 찾았다. 마침 류현진 선수가 투수로 선발되어 역투를 하며 안타까지 쳐내는 명장면을 현지에서 관람하는 행운을 얻었다. 로스앤젤레스 마지막 일정인 5일차에는 오전에 헌팅톤 도서관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후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으로 가서 밴쿠버행 비행기에 탑승하여 캐나다로 향했다.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의 돌비 극장과 66번 국도의 서쪽 끝 표지판

[밴쿠버]

2013년 6월 14일 밴쿠버의 아침을 맞아 캐나다에서의 첫 일정을 시작했다. 오전에 투퍼 중학교를 방문하고 오후에는 밴쿠버 시내 관광을 하였다. 다음 날에는 밴쿠버 주도인 빅토리아로 건너가서 부차트 가든을 찾았다. '정원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은 부차트 가든은 100년의 역사를 가지며 연간 100만 명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빅토리아의 명소로 버려진 석회암 채석장을 꽃밭으로 개발하여 매년 700여 종의 꽃들이 만발하는 화려한 정원이다. 밴쿠버 3일차에는 노스밴쿠버로 이동하여 캐필라노 현수교를 방문했다. 아찔한 계곡 사이의 낭떠러지 위에 설치해 놓은 출렁다리를 건너는 스릴을 만끽하며 울창한 삼림 사이를 산책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공장 지대였던 곳을 대대적으로 개조하여 퍼블릭 마켓과 독특한 아트샵으로 유명한 그랜빌 아일랜드를 방문했다. 다음 날 조식을 마친 후 초등학교 한 군데를 방문하고 밴쿠버 공항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고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밴쿠버 빅토리아의 부차트 가든과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릿지

[마무리]

16년 간격으로 미주 대륙의 동부와 서부를 탐방하면서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의 자연과 도시의 엄청난 위용에 매료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무언가 본토인이 아닌 데서 오는 어색함도 느껴볼 수 있었다.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의 흔적은 보호구역 안으로 매몰되었고, 백인과 히스패닉 그리고 흑인들의 나라가 되어 버린 아메리카 합중국의 현재는 번영 속의 갈등이 분출되기 시작한 위기의 미국이 아닌가 한다. 성숙한 장년으로서 세계를 선도할 선진국으로 가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청년 미국이 오늘의 사태를 극복하고 미래지향적인 통합을 이루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선도국이 되기를 기원하며 미주 탐방기를 마친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해주 여행기  (0) 2020.08.01
북해도 여행기  (0) 2020.08.01
싱가포르 여행기  (0) 2020.07.31
동유럽 견문기  (0) 2020.07.30
중국 여행기  (0) 2020.07.29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