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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종교와 철학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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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집 안이 부산하다. 휴일이지만 늦잠 자는 막내를 깨워 함께 집을 나선다. 큰딸이 오늘 계리사 최종 시험을 보는 날이라 갓바위로 가는 길이다. 어제 내린 비로 상큼해진 공기가 상쾌하게 와 닿는다. 유난히 심했던 폭염이 한풀 꺾이고 산을 오르는 계단에도 제법 서늘한 바람이 감돈다.

갓바위에 몇 차례 오르기는 했지만 이번 산행은 큰애의 합격을 비는 간절한 염원을 품고 가는 길이다. 휴일임에도 경산 갓바위로 오르는 길에는 등산객과 참배객들로 북적거린다. 가파른 계단에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인파가 많은 걸 보니 시험의 계절이 도래한 모양이다. 수능일도 얼마 남지 않았고 몇몇 국가고시가 치러지는 날이라 참배객이 평소보다 많은 게 아닐까. 시험 치는 당사자나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은 어느 집이나 매한가지다. 관봉 꼭대기에서 멀리 남쪽을 바라보는 석조여래좌상을 참배하는 숱한 사람들의 염원으로 온 산이 시끌벅적하다.

집에서 늦게 나온 탓에 공양 시간이 다 되어 올라간 갓바위 부처님 앞 넓은 참배터에는 이미 기도 자리가 만석이다. 뒤에 서서 기다리다가 자리가 비면 들어가 앉을 정도로 빈틈이 없다. 평생에 한 가지 소원은 들어주고 아픈 데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 부처님이 아닌가. 인근은 물론이고 멀리 부산이나 타지에까지 소문이 나서 갓바위 부처님 앞은 늘 붐빈다고 한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딸애의 합격을 비는 참배를 시작했다. 마침 부처님 공양 시간이라 천수경과 반야심경이 낭랑하게 울려 퍼지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갓바위 부처님께 특별한 기도를 드리러 온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둘째 딸이 임용고사를 치는 날 아내와 함께 이 곳에 올라 합격을 기원하는 참배를 드렸다. 그날도 새로 닦아 놓은 경산 갓바위 길로 올라왔다. 대구 쪽으로 올라오는 길보다 절반도 안 되는 거리라 오르기도 그리 힘이 들지는 않았다. 이른 새벽에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바로 갓바위로 와서 점심 공양까지 받으면서 열심히 절하며 소원을 빌었다. 부처님의 효험이 통해서인지 둘째 딸은 연말에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둘째는 우리 내외가 갓바위에 가서 부처님께 기도한 것도 몰랐다고 한다. 예년에 비해 많은 인원을 뽑았기에 둘째가 수월하게 합격한 게 다 부처님의 은덕이 아닐까.

삼십여 년 전이었던가? 젊은 시절에 갓바위를 오른 적이 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갓바위 부처님을 참배한 것 같다. 평소 늘 혼자 올라가시던 어머니께서 함께 가 보자고 해서 따라 간 첫 갓바위 나들이였다. 우리 삼 남매를 키우시면서 어려울 때나 힘들 때나 늘 갓바위 부처님 앞에 와서 절하시던 어머니의 정성을 새삼 옆에서 지켜본 하루였다. 올라가는 산길이 너무 힘들어 내려갈 때는 쉬운 길로 간다는 게 그만 길을 잘못 들어 은해사 입구까지 내려가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다행히 큰 바위에서 참선하시던 스님의 안내로 가까스로 동화사로 내려올 수 있었다. 우리 집이 이렇게라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다 어머니의 갓바위 기원 덕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허리가 편찮으셔서 같이 오를 수 없는 게 무척이나 안타까울 뿐이다.

처음 어머니와 함께 갓바위에 오른 후 다시 이 곳을 찾아온 건 재작년이었다. 등산을 즐기는 친구와 함께 하양으로 넘어가는 능성 고개에서 신령재로 가는 길에 갓바위를 들렀다. 장군바위를 지나 가파른 능선길을 따라 갓바위에 당도하니 부처님의 한없는 자비가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약사여래불의 효험이 아닐까 싶다. 몇 번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기도를 하러 왔건 산행으로 찾아왔건 갓바위 부처님은 늘 그 자리에서 우리들을 자비의 품으로 감싸 안는다.

기복 불교가 초기 불교와는 많이 다르다고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어찌 보면 연약하기 그지없어 의지처가 필요하지 않을까. 신라시대 의현 대사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갓바위 석조여래좌상을 조성했다고 하니 효심이 묻어나는 부처님이 아닌가. 갓바위를 오르는 뭇 대중들은 불심을 통해 소원을 이루고 심신을 치유하고자 정성을 다해 참배를 한다.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 인류가 반구대 암각화를 그리는 그 마음이 오늘날 현대인들이 변함없이 갓바위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마음과 같지 않을까.

이것저것 기도문을 적어 놓고 불전에 헌금도 바치고 내려오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갓바위를 오르내리는 수많은 대중들의 마음이 다 그러하리라. 나약한 심신을 다독이고 기운을 북돋우는 약사불의 효험이 이번에도 우리 큰딸에게 듬뿍 내리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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