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수운과 동학 그리고 용담정

종교와 철학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9. 08:50

본문

6월의 때 이른 여름 태양이 따가운 어느 날 처음으로 용담정을 찾아보니 하늘은 너무나 파랗게 물들어있고 푸른 숲들이 청명하게 길손을 반긴다. 경주에 온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비로소 동학의 창시자인 수운 최제우의 생가와 인근 용담정을 둘러보았다. 경주의 서쪽 외곽지인 현곡면 가정리에 소재하는 생가와 용담정은 천도교의 성지로 신도들의 발길이 잦다고 한다. 천도교의 발상지이자 수운 최제우가 동학의 진리를 득도한 용담정은 수운의 조부가 아들의 공부방으로 세운 암자로 수운이 천하를 주유하다 돌아와 수도에 전념하던 곳이다. 모두 904구의 가사 형식으로 되어있는 천도교의 경전인 '용담유사'를 집필하기도 한 용담정은 구미산 줄기의 기운을 입어 일명 마룡골이라 부르는 계곡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계곡 입구의 넓은 대지에는 수련을 위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어 동학의 새로운 부흥기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수운의 동상과 용담정으로 오르는 길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1824년 현곡면 가정리에서 태어났다. 일설에는 수운이 태어나던 날 용담정을 감싸 안고 있는 구미산이 3일 낮밤을 울었다고 전해진다. 수운의 나이 10세 때에 모친이 돌아가시고 17세 때에 부친마저 세상을 떠난 후 21세부터 10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다. 33세에 양산의 천성산으로 들어가 입산 기도를 시작으로 구도의 길에 들어서서 36세인 1859년 울산에서 경주 용담정으로 귀향하여 이듬해 음력 4월 5일에 한울님을 만나는 종교 체험을 겪은 후 동학의 여러 경전과 수행법을 제정하고 교리의 체계를 세웠다. 1861년부터 포덕을 시작하였으나 성리학 유생들의 배척과 관아의 체포령에 남원 등지로 피신하였다가 1863년 수운의 나이 40세 때 용담정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이듬해 관군에게 체포되어 대구 관덕당에서 참형으로 생을 마치게 된다. 동학의 도를 깨친 후 불과 3,4년 정도 포덕하다가 시대를 앞서간 탓에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맞았으나 수운의 사후 1907년에 그 죄가 풀려서 신원이 회복되었다.

수운 최제우의 짧은 생애 중에서도 천도를 깨친 후 불과 몇 년 동안 포덕을 실천했지만 그의 사후 동학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역사의 주요 변혁기를 이끌어 왔다. 수운의 사후 30년이 지난 1894년부터 시작된 동학혁명의 주축이 되었던 동학교도들이 한때 300만이 넘을 정도로 교세가 대단하였고, 3.1 독립운동의 대표자 33인 중에서 천도교 대표로 15명이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해방 이전의 동학(천도교)의 위상이 얼마나 크게 우리 민중 속에 자리 잡았는지를 알 수 있다. 수운의 '시천주(侍天主)'에서 시작한 종지가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이어지고 천도교로 개칭한 손병희에 의해 '인내천(人乃天)'으로 교의화하여 평등 의식과 인간 존중 사상의 대의를 분명히 밝히고 있으니 천도교는 인류 보편 종교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민족 종교가 아닐 수 없다.

용담정 전경과 수운의 영정

불교를 창시한 고타마 싯다르타도 그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나서 태어나 삶의 고뇌에 괴로워하다 29세에 출가하여 혹독한 수행과 고행 끝에 그의 나이 35세 되던 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으로서 처음 사성제와 팔정도의 가르침을 시작으로 80세를 일기로 열반에 들 때까지 수많은 교화 활동으로 오늘의 불교적 가르침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또한 기원전 5년을 전후한 시기에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 그리스도는 30세까지의 행적이 성경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지만 일설에는 티베트 라마교 사원에서의 수행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 후 처음으로 제자들을 들이고 기적과 말씀으로 7년 간 유대 지방을 다니며 전도하시다가 기원후 33년 경 유대인들의 고발로 빌라도 총독의 십자가형을 언도받아 죽음을 당하시고 무덤에 묻힌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메시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1/3이 삼가 모시고 숭배하는 성자가 되었다.

그 외에도 이슬람교를 창시한 마호메트는 570년경 메카에서 태어나 40세 되던 해에 세속적인 생활을 정리하고 히라산 동굴로 들어가 명상 수련 중 알라의 계시를 받아 신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으며 초기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피신해서 세력을 키워 아라비안 반도 전역을 선교와 원정으로 장악하여 오늘날 알라신을 숭배하는 이슬람교를 퍼트린 후 632년 메디나에서 병환으로 생을 마친다.

이와 같이 세계적인 보편 종교의 창시자들은 기존 신념과 질서에 반기를 들고 기득권에 대한 혁신을 내세움으로써 인류의 평등과 박애의 가치를 깨우치게 한 점에 있어서는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햇살이 따가운 용담정을 둘러보고 계곡을 내려오면서 수운의 깨우침을 체득하고 여러 보편 종교들이 추구하는 근원적인 목소리들을 오롯이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수행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해야 할 과업이 아닌가 생각하며 수운의 생가로 발길을 옮겼다.

수운 최제우의 생가와 유허비

용담정에서 1킬로 정도 떨어진 수운의 복원 생가 앞에는 화재로 소실된 원래의 생가에 대한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수운의 생가 뒤로는 산봉우리가 우뚝 서 있고 앞으로는 들판과 소현천이 흐르고 있어 배산임수의 전형적 풍수 자리로 저 멀리 구미산과 용담정을 바라보는 명당이 아닐 수 없다. 천지의 지기가 만물을 형성하고 키워낸다는 신념과 그 기운의 융성과 쇠퇴로 삶과 죽음이 갈릴 수 있다는 믿음이 종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면 동학이든 서학이든 무슨 차별이 있을 것인가 하는 상념에 젖으며 수운의 생가를 뒤로 하고 발길을 돌렸다.

'종교와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찾아서  (0) 2020.08.09
갓바위  (0) 2020.08.08
사주와 운명  (0) 2020.08.08
석등과 가로등  (0) 2020.08.08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