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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과 여행

에세이 마당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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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타고르가 ‘어리석은 사람은 서두르고 영리한 사람은 기다리지만 현명한 사람은 정원으로 간다.’고 했고, 유영만 교수도 ‘인생에서 책은 중요하지만 산책은 더 중요하다.’고 피력한 바와 같이, 우리 인생에서 산행과 여행은 아주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다. 산행은 우리 몸의 건강함을 채워 주고, 여행은 우리에게 마음의 풍요로움을 가져다준다.

연전에 다녀온 제주도 산행은 세 번째로 한라산 백록담을 품에 안고 왔다. 대학 졸업반 때의 제주도 첫 탐방에서는 어리목 코스로 백록담을 밟았고, 신혼여행 가서는 영실 코스로 올라가 역시 백록담 아래로 내려가는 행운을 누렸다. 세 번째 산행에서는 성판악에서 올라가 관음사로 내려왔으니 한라산 등산길을 거의 완주한 셈이다. 마지막 산행에서는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아 거의 안개와 구름에 가려 한라산의 수려한 전망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정상에 오르자 짧은 순간 운무가 걷히며 백록담이 햇살에 드러나는 신비로운 장면을 포착했다. 아무에게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령스러운 백록담을 품에 안으며 힘든 등정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었다.

젊은 시절에는 그래도 유수의 명산들을 더러 다녔다. 안동에 있을 때 1박 2일로 지리산 천왕봉을 가장 가파른 중산리 코스로 완주한 적이 있다. 젊었기에 가능한 무모한 도전으로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아찔하다. 일반 운동화에 오리털 파카 하나 걸치고 눈길로 반들반들한 천왕봉을 올랐으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산행이 아닌가? 등산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도 중도에 내려오는 판에 우리 일행은 뜻을 굽히지 않고 결국 천왕봉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그 시절 정상에 오른 산들 중에는 가야산과 오대산, 속리산 등이 있었다. 남북교류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금강산을 다녀오는 행운도 가졌었다. 아주 젊었을 때는 비슬산 정상을 오른 적도 있지만 그리 높지 않아 산행의 참맛을 느끼지는 못했다. 산행의 묘미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닌가 한다. 경상도와 전라도, 충청도에 걸쳐 있는 삼도봉에 오른 적도 있는데, 온 사방이 탁 트인 산정에 오르면 온갖 잡념들이 다 사라지고 만다. 아마도 이런 희열을 만끽하고자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16좌를 모두 다 오른 것이 아닐까?

산행과 달리 여행은 즐거움의 연속이다. 특히 외국 여행은 참으로 설레는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공무 연수로 다녀온 미주 대륙과 수학여행 인솔 차 갔다 온 일본, 북경과 홍콩 등 여러 도시를 다녀온 중국, 가족 여행으로 다녀온 싱가포르 그리고 국제 교류로 다녀온 필리핀 정도가 해외여행의 이력서이다. 그렇기에 이번에 다녀온 동유럽 여행은 새로운 대륙으로 건너간다는 점에서 무척 기대가 컸다. 처음 수학여행 떠나는 6학년 아이의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덕분에 미리 시차 적응이 되어 도착 후에도 큰 무리가 따르지 않았다. 동유럽 5개국을 일주일 만에 돌아본다는 것은 말 그대로 주마간산 격이다. 하루에 한 나라를 다니면서 다음날은 또 국경을 넘어야 하는 강행군이 계속되었다. 무려 2,400킬로를 달렸고 하루에 평균 5킬로를 걸어 다녔다. 차창에 스쳐가는 유럽의 풍경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마치한 나라인 양 비슷했다. 우리 농촌보다 훨씬 더 도시적인 전원 풍경, 우리 도시보다 훨씬 더 고풍스러운 도시의 유적지들이 무척 인상에 남았다.

동유럽의 첫인상은 한 마디로 조용하고 깨끗한 전원 교향악 같았다. 어디를 가나 푸르게 펼쳐져 있는 밀밭과 정돈된 수풀이 한 폭의 달력 그림을 연상시켰다. 도시는 고풍이 묻어나는 예스러움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예술의 정원이었다. 어디 하나 무질서한 흐트러짐을 찾기가 힘든 그림 같은 정경들이 그냥 주저앉아 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풍경보다 더 감명을 준 것은 사회 복지 제도였다. 무상 의료에다가 무상 대학이 우리보다 경제력이 크게 앞서지 않는 동유럽 나라들의 기본 혜택이었다. 물론 소득의 40% 이상을 세금으로 미리 내기에 노후 연금까지 보장되는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사회적 기업들의 사회 환원도 복지 재정의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하니 우리 기업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아닐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한 어느 재벌 총수의 말처럼 앞으로는 산행으로 몸을 다지고 여행으로 마음을 살찌우는 기회를 많이 갖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버리고 번뇌를 내려놓는 것이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 하더라도, 자연과 인간을 가까이 대하는 산행과 여행이 피안에 이르는 뗏목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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