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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사랑

에세이 마당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7.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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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새벽이 되면 자연스레 일찍 잠이 깬다. 주말 아침 테니스를 즐기러 가기 때문이다. 간혹 다른 행사가 있거나 늦잠을 자는 경우를 빼고는 거의 주말마다 이른 아침부터 테니스장을 찾는다. 이렇게 한 가지 취미로 30년 이상 즐겨온 게 바로 테니스다.

맨 처음 테니스와 인연을 맺은 것은 첫 발령지인 청송에서이다. 중간 발령이라 10월 중순에 통보를 받고 바로 테니스 라켓을 장만했다. 대학 다닐 때에도 별반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대뜸 라켓을 사 들고 첫 부임지로 향했다. 다행히 그 학교에 테니스장이 두 면 갖추어져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더라면 테니스와 인연을 맺지 못했으리라. 첫눈에 반한 연인처럼 그저 테니스 라켓을 들고 무작정 코트에 나선 호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찌 보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아내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게 테니스가 아닌가? 어떤 취미나 특기든지 처음부터 잘하는 경우는 드물다. 테니스도 마찬가지다. 처음 라켓을 잡은 그 당시에는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공을 치고 보내는지 전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잘 치는 선배들의 코치도 받고 나름대로 책도 사 보며 열심히 치는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든지 관심을 갖고 집중하다 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테니스에도 예외 없이 통하는 것이다.

아직 초보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 주변 동료들이 부추겼다. 큰 내기를 걸자는 것이었다. 물론 내 파트너는 당시 수준급의 플레이어였기에 믿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로 끝나고 그 날 내기로 한 뒤풀이 비용을 몽땅 치르고 말았다. 오기가 생긴 탓인지 그다음 방학은 온통 테니스로 채워졌다. 초보를 넘기 위한 약점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 집에서 가까운 경북대 테니스장을 찾았다. 여름이라 아무도 없는 빈 코트의 벽면을 마주하고 열심히 백스윙을 익혔다. 포핸드로 날아오더라도 돌아서서 백핸드로 치는 강훈련이 여름 내내 이어졌다. 아침에 입고 간 체육복이 온통 땀으로 다 젖었다. 그 훈련 덕에 지금도 백핸드가 포핸드보다 더 안정되고 자신이 있다.

여름의 특별훈련으로 다음 학기가 시작되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다. 다른 학교로 옮긴 후에도 테니스는 빡빡한 일과 중의 오아시스가 될 정도로 삶의 큰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두 시간 이상 연달아 수업이 없으면 짬을 내어 테니스장을 찾았으니 테니스는 또 다른 삶이었다. 몇몇 학교를 거치면서 점점 더 숙달되어 가는 테니스 기술은 인생의 보람이자 행복이었다. 수업에 지쳤을 때나 고민에 빠졌을 때도 코트에 나가면 만사가 다 치유가 된다. 인생에서도 이런 힐링이 필요할 때가 많다. 테니스 기술을 익히듯이 힐링의 기술을 터득할 수는 없을까?

우연인지 행운인지는 모르지만 가는 학교마다 테니스부가 있었다. 특히 안동에서는 유명한 프로 선수까지 배출한 학교에 근무하다 보니 테니스에 대한 안목이 높아졌다. 전문 코치로부터 한두 마디 지도받은 게 내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그때 배운 서비스 동작이 지금도 녹슬지 않아 예리하게 파고든다. 중급 정도의 실력이 되자 안동에서는 제법 이름난 테니스 클럽에 가입을 했다. 수준 높은 실력자들과 함께 즐기는 테니스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다.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월례회지만 그 날만은 온통 축제의 날이다. 코트에서 시작된 열정은 밤이 늦도록 또 다른 열망으로 이어져 인간관계의 유대가 더욱 끈끈해졌다. 테니스 활동은 긍정과 행복의 촉매제로 나 자신을 치유하고 소통을 넓히는 진정한 삶의 활력소가 아닐 수 없다.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과도한 몰입의 부작용인지 신의 질투인지 어느 날 오른쪽 팔꿈치에 이상이 왔다. 소위 테니스 엘보우가 온 것이다. 테니스는커녕 글씨 쓰기도 어색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부득불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아픔으로 테니스를 놓았다. 설상가상으로 구미로 옮긴 학교에서는 코트도 어설프고 테니스 동호인도 별로 없어서 몇 년 간 월례회 수준의 명목만 유지하는 상태로 테니스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소위 결혼 생활의 권태기처럼 테니스와의 인연도 이렇게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기껏 닦아 놓은 테니스 기술이 하루하루 무디어가는 서글픔에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졌다. 마음의 빈 구석을 채우려고 시작한 골프 연습이 더욱 테니스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의 5년을 놓아버린 테니스에 녹이 쓸 무렵 새로이 전직한 교육청에서 다시금 열정이 샘솟았다. 교육청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집에 갈 수 없는 주중에는 한 면이지만 숙소 앞 테니스장을 틈만 나면 찾았다. 늦은 밤까지 라이트를 켜 가며 즐기는 가운데 잊혀진 테니스와의 인연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테니스가 일과 후 취미 활동으로 되살아나고 덩달아 내 마음까지 훈훈해지며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학교 방문 시에도 용무를 끝내고 함께 즐기는 테니스를 통해 인간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요즘은 골프에 밀려 많이 퇴색되었지만, 테니스는 여전히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 힐링 스포츠임에는 틀림이 없다.

연전에 대구로 이사 온 후 주말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매달 월례회 모임도 있지만 평소 주중에 즐기기가 어려워 주말 테니스에 몰두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이른 새벽부터 10시까지 주로 교육 가족들과 테니스를 즐긴다. 매주 만나지만 늘 활기가 넘치고 즐겁게 경기하고 마치면 조촐한 점심도 함께 하니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을 성싶다. 코트에 들어서면 남녀노소와 신분귀천이 다 소용없다. 오로지 진정한 테니스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 날아오는 공 하나에 온 신경을 모으고 휘두르는 팔 동작에 내 마음을 실어 보낸다. 흠뻑 젖은 옷자락으로 땀을 훔치는 그 상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주말 테니스를 생각하면 금요일 밤부터 기분이 좋아진다는 어느 선배님의 말씀처럼 테니스는 우리 모두의 건강을 되찾고 마음을 털어버리는 진정한 영양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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