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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후감

비평과 후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2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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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은교’가 상당한 이슈를 제공하며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기에 더욱 관심을 끌었던 모양이다. 좀처럼 각본을 허락하지 않던 작가가 이번에는 선뜻 정지우 감독의 손을 들어준 이유도 궁금하다. 한편으로는 신인 배우인 김고은에 대한 언론의 집중도 영화 ‘은교’의 흥행 가도에 큰 공을 세웠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먼저 소설과 만났다. 소설은 특이한 시점으로 전개되어 일반적인 형식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변호사의 시점과 이적요의 시점 그리고 서지우의 시점을 통해 다각적으로 은교를 해부하고 있다. 은교는 이들 사이에서 현실과 과거의 공약수로 넘나들며 인물 간의 갈등을 유발한다. 은교는 한마디로 욕망의 불쏘시개로 등장인물들을 불행에 빠트리는 팜므파탈과 같은 존재였다.

변호사는 노트를 공개할 수 없어 난처한 입장에 빠지고, 서지우는 욕망을 이룬 대가로 죽음을 맞이하고, 이적요는 이루지 못한 욕망으로 인해 파멸하고 만다. 서지우의 죽음은 자기 과실로 인한 사고사였지만 은교와의 정사로 인한 새벽의 참상이었고, 제자와 은교의 정사를 목격한 이적요는 무서운 음모를 꾸민 죄책감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소설에서의 결말은 오직 은교만이 홀로 남는다. 오로지 대상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소설 ‘은교’에서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각각의 시점에서 바라본 관점과 인물이나 주인공에 따라 주제가 달라지겠지만, 소설에서의 무게 비중은 이적요 시인에 있다. 은교는 시인의 감정과 욕망을 일깨우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중은 영화에서는 다소 달라지지만, 시인의 육체적 늙음과 풋풋한 아름다움을 지닌 관능에 대한 젊은 정신적 욕망의 대비가 소설의 중심 테마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이적요를 통해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라고 말하며 젊음과 늙음의 단순한 이분법을 경계하고 있다.

이제 영화로 들어가 보자. 영화는 극 장르의 속성에 따라 화자 없이 장면을 보여주기에 관객은 제삼자적 입장에서 관찰할 뿐이다. 다만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에 따라 전체 줄거리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적요와 서지우의 각별하고도 특이한 사제 관계로 영화는 시작된다. 고요한 연못에 파문이 일듯 은교의 등장은 둘 사이를 갈라놓는다. 상투적인 삼각관계가 세 사람을 얽어 놓는다. 영화는 내내 이 얽힘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간의 내밀한 욕망의 미세한 불꽃이 갈등을 불러일으키며 인물 간의 관계를 얽어맨다. 사제 간의 관계가 연적으로 바뀌며 애증의 갈고리를 만들며 파국을 향해 달린다.

항간에 파다한 이적요와 서지우 그리고 은교의 성적 노출은 오히려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영화 자체의 독자성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은교의 풋풋함이 아직은 이적요의 마음을 뒤흔들 만한 매력적인 자태가 되기에는 부족했다. 이적요는 자신의 노출이 늙음의 아바타로 남기를 바라겠지만 그 또한 이야기 맥락에서 대사나 행동으로 우회하는 편이 나을 듯싶다. 서지우의 노출은 비록 무리가 따르지는 않았지만 욕망의 충동적 행위를 마음껏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소설에서 드러난 내면적 갈등을 제대로 구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많았다.

영화 ‘은교’ 제작사가 100만 관객 돌파 기념으로 제작한 포스터 제목인 ‘욕망은 늙지 않는다.’가 영화를 잘 대변하고 있다. 삶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본능과 성적인 욕망은 인간의 원초적 근원이다. 의식의 지배를 받지 않는 저변의 잠재의식은 생명의 조건을 제공한다. 즉 욕망이 사라지는 순간 인간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적요를 죽게 만드는 것은 죄책감이 아니라 점점 사그라지는 자신의 원초적 욕망의 소진일 것이다. 은교를 내치는 순간 이적요는 삶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리비도가 사라진다는 것은 바로 존재감의 상실로 이어지고 만다.

그렇기에 영화 ‘은교’는 우리 의식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본능적 욕망을 마주하게 한다. 언어적 판단과 재단을 넘어서는 생의 원형으로의 욕망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떠한 가치 판단도 더 이상 원형적 욕망을 난도질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어느 누구도 이적요에게 함부로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욕망의 분출구가 질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주변의 의식이나 대상의 관계에 속박되지 않고 순수한 욕망의 추이에 집중했더라면 더 좋은 이야기나 영화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과 영화를 통해 바라본 은교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하는 원초적 관능의 화신으로 꺼져가는 욕망의 불꽃을 피우는 생명의 도화선이며, 순수한 아름다움과 풋풋한 생명력이 넘치는 삶의 원동력으로 우리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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