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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 여행기

여행 이야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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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지난해부터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무역 분쟁이 시작되고, 코로나 19 사태 이후에는 한일 간 출입국 금지로 상호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 우리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일본으로부터의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2006년 오사카와 교토를 처음 밟아본 이후 지난 2017년 8월 두 번째로 북해도 일원을 다녀왔다.

오랜 세월 동안 대륙과 연결되어 있던 일본 열도가 약 1,500만 년 전에 떨어져 나가 지금의 섬나라가 되었고 바이칼 호수에서 출발한 석기인들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들어가 살게 된 시기도 불과 5,000년 전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 일본 열도의 북부에는 북방의 아이누족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혼혈이 이루어지며 오늘의 일본을 형성하였으리라.

기원전 1세기경부터 100여 개의 소국으로 나뉘어있던 일본은 3세기 중반 부족 연맹체인 야마타이국의 히미코 여왕의 지배를 받다가 3세기 말에는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인 야마토 정권의 통치를 받게 된다. 일설에는 한반도의 마한 세력이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토 정권을 세웠다고 하는데 오늘의 일본 천황은 바로 이 야마토 대왕의 후손이다. 4세기 후반에는 한반도의 부여족 일부가 백제와 가야를 치고 바다를 건너가 당시 야마토 치하의 일본을 정벌하기도 하며 한반도 출신의 왕비가 일본을 다스린 기록도 있지만 옛 천황들의 무덤으로 알려진 닌토쿠 고분군의 발굴이 금지되어 일본 고대사의 진실은 아직도 베일에 갇혀 있다. 

야마토 정권 치하에서의 왕은 사실 상징적 존재로 받들어졌고 이 시기에 한반도로부터 많은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7세기 무렵의 아스카 문화는 고대 불교문화의 융성기로 쇼토쿠 태자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8세기에 들어와서 소위 나라 시대를 열었는데 일본이라는 국호를 처음 사용하였고 그 첫 수도였던 나라를 중국의 장안을 본떠 설계했다고 한다. 나라 시대를 이어 8세기에는 다시 교토로 수도를 옮겨 예술과 향락의 시대로 점철된 헤이안 시대를 열어 12세기까지 이어진다. 

10세기 무렵부터 영주들의 장원제가 자리잡아 소위 무사단(사무라이) 계급이 형성되고 이들 간의 분쟁과 천황과 쇼군의 자리다툼이 심해지다가 12세기 말부터는 막부 통치가 시작되어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는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된다. 16세기 말 명과의 교역을 구실로 조선을 침략한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은 명분상 패퇴하였지만 엄청난 선진 기술들을 약탈하여 근대 사회로의 비약적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으며, 막부로부터 천황의 실권을 되찾아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화의 길로 들어서는 메이지 시대 이후 아시아에서의 일본은 과거 소국의 탈을 벗고 급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국강병의 힘을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허비한 일본은 세계 최초의 핵공격으로 무너지고 패망의 몰락을 맛보았으나, 1950년 6.25 전쟁의 발발로 엄청난 군수물자의 보급기지가 되어 급속한 고도성장을 이루며 이를 발판으로 1968년부터는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의 경제 대국에 오르게 된다. 경제적 부흥에 비해 일본 정치는 패전 후 1946년부터 대부분 자유민주당의 일당 독재 체제가 유지됨으로써 선진 민주화를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첫째 날]

대구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으로 저녁 6시 무렵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 수속을 밟고 한 시간 정도 이동하여 삿포로 시내로 들어와서 게 전문 뷔페식당에서 만찬을 즐겼다. ASIL SAPPORO 5*5 건물의 3층에 있는 뷔페 DEN이라는 식당인데 한 층 전체가 대게와 맥주 그리고 고기를 무한으로 리필해서 먹을 수 있는 대형 식당으로 고기와 조개를 구워 먹기도 하고 여러 종류의 대게들을 마음껏 빼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덤으로 생맥주가 무한으로 제공되니 첫날의 피로가 확 가시는 만찬이었다.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 삿포로 시내에 위치한 퀸테사 특급 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뷔페 DEN의 무한리필 메뉴와 맛난 음식들

[둘째 날]

호텔 조식 후 노보리베츠로 이동하여 일본 에도 시대를 재현해 놓은 테마촌을 방문했다. 우리나라의 민속촌처럼 꾸며 놓은 시대촌으로 짤막한 시대 연극도 공연하며 장터도 재현해 놓았다. 점심을 먹고 수증기와 유황 냄새가 자욱한 지옥 계곡을 둘러보고 1943년의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진 기생 화산인 소화신산도 멀리서 구경한 후 도야호로 이동했다. 북해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도야호의 유람선을 타고 호수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며 사이로 전망대도 올라갔다. 구경을 마친 후 1시간 반 정도 이동하여 니세코로 들어가서 니세코 힐튼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북해도의 후지산이라는 요테이산을 바라보며 즐기는 호텔 노천 온천욕이 일품이었다. 

노보리베츠 시대촌 거리와 시대극의 일부
지옥계곡의 온천 수증기와 도야호의 유람선

[셋째 날]

호텔에서 조반을 먹고 요테이산으로 이동해서 맑은 공기와 신선한 천연수가 흐르는 후키다시 공원을 찾았다. 바로 마셔도 되는 깨끗한 계곡물이 인상적인 공원을 둘러보고 오타루로 향했다. 영화 '러브레터'의 무대이며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운하와 항구의 도시 오타루는 1920년대 물류 거점으로 성장하였으나 1950년대 이후 항구로서의 효용 가치가 떨어져 매립 위기에 처하자 기존 시설의 재활용과 보존을 통해 새로운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운하 관광을 마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가득한 일본 최대 규모의 오타루 오르골당을 찾아 수많은 오르골들을 보며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오타루 관광을 마친 후 다시 니세코 힐튼 호텔로 돌아와서 북해도 일정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후키다시 공원의 맑은 계곡물과 오타루 운하 전경

[넷째 날]

호텔 조식 후 삿포로로 이동해서 시내 관광을 다녔다. 오오도리 공원과 구청사 그리고 시계탑 등을 둘러보고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도 들렀다. 북해도 명물 과자로 유명한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에서 쿠키 제조 과정도 견문하고 시식도 하며 입을 즐겁게 했다. 삿포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시계탑은 차로 지나가면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오오도리 공원을 지나 250만 개의 붉은 벽돌로 1888년에 지은 미국식 네오바로크 건축 양식의 삿포로 구청사를 방문하여 80년간 북해도의 도청사로 사용한 흔적과 역사 등을 전시해 놓은 보존실과 박물관 등을 둘러보았다. 삿포로 구청사 관광을 끝으로 북해도의 4박 5일 일정을 마치고 면세점에 들렀다가 신치토세 국제공항으로 이동해서 대구행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라 밤 10시 무렵 대구에 도착했다.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 일부와 삿포로 구청사 전경

[마무리]

세계사를 일견해 보아도 이웃 나라 간의 분쟁이 비일비재하기에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의 관계도 늘 서로를 혐오하는 사이가 되었다. 잘 밝혀지지 않은 고대사의 어느 한 시기에는 사이좋은 관계로 지냈으리라 추측이 되지만 중세 이후 왜구의 출몰과 근세의 왜란으로 우리나라를 괴롭히다가 결국 현대에 들어와서는 식민지 병탐으로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입히고 말았다. 앞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닌 서로 이웃사촌이 되려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반성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양국 모두 전후 세대가 이제는 70%를 넘어서고 있고 역사 문제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떨어지고는 있지만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한 다양한 접근과 노력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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