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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견문기

여행 이야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7. 3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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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동유럽 국가라 함은 구소련 국가들과 중앙 유럽의 국가들을 지칭하지만 보통 냉전 시절 공산권에 속했던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 헝가리, 루마니아 등을 가리킨다. 그렇기 때문에 동유럽의 의미는 지정학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정치적 개념에 더 가깝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구소련에 의해 강제로 점령당한 나라들을 서유럽과 대비되는 동유럽으로 지칭하게 되었기에 지리적으로는 중유럽에 속하는 주요 나라들을 동유럽 국가라 부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동유럽 지역은 중세까지만 해도 동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아 당시의 서유럽보다 더 부유한 곳으로 흑해 무역과 중동과의 교류로 문화적으로도 번성하였다. 그러나 동방과 넓은 경계로 연결되어 있기에 4,5세기 때는 훈족이 침입하였고 13,14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지배에 들어갔다가, 16세기 중엽부터는 결국 동유럽의 남쪽 대부분이 13세기부터 끊임없이 침략해 오던 오스만 제국의 통치 아래 넘어가게 된다. 이후로는 서유럽에 뒤쳐지기 시작해서 제1차 세계대전 후에 가까스로 독립하는 듯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구소련에 점령되어 공산 위성 국가로 전락하고 만다.

현대로 넘어와서 1989년 동유럽의 혁명과 구소련의 몰락으로 대부분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사회 경제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서유럽에 비해 상당히 낙후된 변두리 지역으로 치부되고 있다. 과거 러시아에 대한 반감으로 대부분의 동유럽 국가들은 NATO와 EU에 가입하여 서유럽 국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인구 감소와 높은 실업률로 인해 어려움이 많다.

동유럽의 전형을 보여주는 체스키크룸로프 전경

[첫째 날]

오전 10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을 밟고 오후 4시 비행기로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향해 출발했다. 비행시간은 11시간이 넘지만 시차가 -8시간이라 현지 시간 저녁 7시에 도착하여 바로 버스를 타고 첫날 숙소인 체코의 브르노 호텔로 향하여 밤 10시가 되어서야 도착했다. 한국 시간으로는 이틀이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도시라 오후에 출발해서 11시간 후에 도착하니 다시 저녁이 되어 시차 적응이 상당히 힘들었다. 장시간의 비행과 버스 탑승으로 긴 하루를 보낸 후 동유럽 여행의 첫 밤을 맞았다.

[둘째 날]

오늘의 주요 일정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방문이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의 남쪽 소도시 크라쿠프의 서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원래는 오슈비엥침으로 불렀으나 나치의 폴란드 침공 후에 아우슈비츠로 바뀌었다고 한다. 체코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브르노는 잠시 묵었다 가는 곳이라 시가지 관광도 없이 바로 폴란드와의 국경으로 넘어가서 점심을 해결한 후 오후 1시 30분경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만행으로 죽음의 수용소라는 악명을 떨치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의 학살 수용소 가운데 그 규모가 가장 큰 곳으로 이 수용소에서만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희생자들은 유대인이 대부분이었으나 폴란드인과 집시들도 많았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문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만행으로 꼽히는 나치 독일의 홀로코스트 현장인 아우슈비츠로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나 영화 '쉰들러 리스트' 등을 통해 당시의 생생한 경험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하다가 직접 만행의 현장을 본다고 생각하니 암울한 먹구름 같은 게 가슴을 내리누른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쟁으로 무수한 희생이 있었고 자연재해나 전염병으로 숨져 간 사람들도 엄청나지만 어느 한 광기 어린 집단의 있을 수 없는 악행으로 수백만 명이 희생된 나치의 수용소 학살은 그 어떤 표현으로도 참담함을 드러내기가 힘든다. 1945년 1월 27일 소련군의 진주로 해방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그 후 지금까지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는 참혹한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건물들

'ARBEIT MACHT FREI'라는 문구가 새겨진 정문을 지나면 기념관으로 조성된 수용소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건물 내부에는 당시 물품들과 사진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수용소 맨 뒤쪽에는 감독자 숙소와 시체 소각장이 인접해 있다. 소각장 내부에는 가스실도 그대로 남아 있는데 벽면의 무수한 자국들이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전해 준다. 가스실 건물 옆 공터에는 1인용 교수대가 눈에 띄는데 당시 수용소 소장이었던 독일 장교 루돌프 헤스가 패전 직후 도피하다가 영국군에게 체포되자 수용소로 다시 압송하여 1947년 4월 16일 교수형을 집행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수용소보다 좀 늦은 시기에 설치된 아우슈비츠 절멸 수용소의 초대 소장이자 마지막 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는 처형되기 전 감옥에서 자신의 일생을 고백하는 '헤스의 고백록'을 집필했다고 한다. 수용소 견문을 마치고 다시 크라쿠프로 돌아와 중앙시장을 한번 둘러본 후 숙소인 CROWN PIAST 호텔로 향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각장 입구와 수용소 소장이었던 루돌프 헤스의 교수형 장소

[셋째 날]

오늘 일정은 폴란드의 유명한 관광지인 비엘리츠카 소금 광산 방문이다. 이 광산은 크라쿠프 남동쪽 10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계 최대 지하 소금 광산으로 지하 150미터까지 내려가서 13세기 때부터 소금을 채굴했다고 하니 그 규모와 연원에 있어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심지어 광산 내부에는 킹가 성당이 지하 100미터 아래에 조성되어 다양한 조각품들과 함께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킹가 성당은 1869년도부터 조성 공사를 시작하여 70여 년이 지난 1963년에 완공되어 1,5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성당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 외에도 광산 내부에는 다양한 조형물과 기념물들로 가득 차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볼거리가 많았다.

소금 광산 내부의 기념물과 최후의 만찬 조형물

비엘리츠카 소금 광산을 뒤로 하고 크라쿠프 바벨성을 찾았다. 폴란드 왕실이 바르샤바로 옮기기 전까지 거주했다고 하는 바벨성은 성 안에 대성당과 박물관도 있는 다양한 형태의 건축 양식이 혼재되어 있어 멋진 풍광을 연출해 낸다. 그도 그럴 것이 11세기부터 16세기 말까지 거의 500년 이상 폴란드의 수도가 있었던 크라쿠프의 왕궁이었으니 화려한 정원들과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점심을 먹은 후에 크라쿠프를 출발하여 타트라 산맥에 있는 숙소로 향했다. 슬로바키아 영역의 타트라 국립공원 안에 있는 KOLOWRAT 호텔로 가는 길에 타트라 산맥의 전망대에 올랐으나 날씨가 너무 흐려 멋진 파노라마의 풍광은 아쉽게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슬로바키아에서의 유일한 여정을 아쉬움으로 남기고 산으로 둘러싸인 절경 속에서 하루 묵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크라쿠프 바벨성 전경과 독특한 지붕의 숙소

[넷째 날]

아침 일찍 산 속의 숙소를 떠나 중간에 점심을 해결한 후 오후 3시가 다 되어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다뉴브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유유히 흐르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마차시 성당과 어부의 요새 등을 둘러보고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부다 왕궁도 들어가 보았다. 곧이어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몸소 체험하고자 유람선에 올라 강변의 멋진 풍광들을 음미하였다. 웅장한 국회의사당 건물과 부다 왕궁의 돔이 강가에 늘어서 있고, 어부의 요새와 부다페스트의 랜드마크인 세체니 다리도 다뉴브강의 풍광으로 다가왔다. 저녁을 먹고 세체니 다리를 거닐며 멋진 사자 조각상도 만져보고 시내 투어를 한 후 오늘의 숙소인 RAMADA PLAZA 호텔로 들어갔다.

세체니 다리와 부다 왕궁과 마차시 성당

[다섯째 날]

조반을 마치고 숙소를 출발하여 첫째 날에 도착했던 비엔나로 향했다. 점심을 먹고 바로 쉔부른궁으로 들어가 오스트리아의 왕궁을 둘러보았다.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가 여름 별궁으로 지은 쉔부른궁은 '아름다운 우물'이라는 뜻의 로코코 건축 양식의 건물로 50만 평에 이르는 대지에 1,441개의 방이 있다. 1996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궁내 공원 안의 동물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랜드마크의 하나인 슈테판 대성당은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지다가 14세기 중반에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성당의 내부는 18세기에 들어서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독특한 혼합 양식의 건물이다. 높이가 서로 다른 남북 탑은 르네상스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이 성당에서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졌다고 한다. 비엔나 시내를 구경한 후 숙소로 돌아왔다.

쉔부른 궁전 정원과 슈테판 대성당

[여섯째 날]

조반 후 비엔나 숙소를 출발하여 점심 무렵 잘츠캄머구트에 도착했다. 잘츠캄머구트의 초입에 있는 장크트 길겐은 모차르트의 어머니 생가가 있는 곳으로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가 자주 드나들었다고 한다. 볼프강 호수의 맑은 물과 어우러진 멋진 풍광에 매료되어 유람선으로 한 바퀴 돌아보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이런 멋진 환경에서 어린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음악성이 마음껏 발현되었으리라. 오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잘츠캄머구트의 진주 할슈타트를 방문했다. 세계 최초의 소금 광산을 갖고 있기도 한 할슈타트는 인구 천 명이 채 되지 않은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고풍스러운 집들과 깊고 푸른 호수가 어우러진 동화 속 마을 같았다.

잘즈캄머구트의 모차르트 외가와 할슈타트 전경

할슈타트의 멋진 풍광을 뒤로하고 모차르트의 출생지인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고향이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인 잘츠부르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소금의 성'이라는 말처럼 예부터 부유한 음악의 도시였다. 1996년에는 구시가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수도인 비엔나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잘츠부르크의 가장 번화한 게트라이데 거리는 모차르트의 노란색 생가가 있는 랜드마크로 늘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1606년 대주교가 그의 애인인 성주의 딸에게 선물한 미라벨 궁전과 정원을 둘러보니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송'이 들리는 듯 풍광에 매료된다. 또한 젊은 시절의 모차르트가 오르간 연주자로 재직하기도 한 잘츠부르크 대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큰 6,000개의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명소로 모차르트가 유아 세례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모차르트의 생가와 잘츠부르크 대성당

[일곱째 날]

아침에 잘츠부르크 숙소를 출발하여 점심 무렵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에 도착했다. 블타바강이 굽이쳐 흐르는 체스키크룸로프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 속 마을로 알려져 있어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뜻의 체스키크룸로프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 양식의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아름다운 전망과 블타바강에서의 래프팅을 즐기는 명소이기도 하다. 프라하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 체스키크룸로프성은 처음에는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그 후 여러 양식으로 재건되어 복합적인 성의 모습으로 블타바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다. 성 안에는 예배당과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성탑이 우뚝 서 있고 각각의 건물들은 길게 정원으로 연결되어 있다. 오후에 체스키크룸로프를 출발하여 저녁 무렵 프라하에 도착했다. 프라하에 도착하자 바로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던 장소인 바츨라프 광장과 매 시각 정각에 특별한 이벤트와 황금닭 울림을 제공하는 구시청 앞 세계천문시계를 둘러보았다. 내일 일정이 빠듯하여 야경의 카를교도 돌아보며 프라하의 밤 풍경도 만끽했다.

멀리 보이는 체스키크룸로프성과 성 안 모습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과 구시청 세계천문시계

[여덟째 날]

오늘은 사실상 열흘 간의 일정 중 마지막 날이라 할 수 있다. 오며 가며 보내는 이틀은 거의 비행기 탑승 시간이라 날짜로는 열흘이지만 여정이 있는 날은 8일뿐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가까운 프라하성으로 올라갔다. 9세기부터 블타바강 유역에 조금씩 세워지기 시작한 프라하는 산업혁명 이후 제조업의 급속한 발달에 힘입어 체코의 경제 중심도시가 되었다. 9세기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프라하성은 14세기 카를 4세 때 완공이 되어 현재 대통령궁으로 사용하면서 지금까지 사용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프라하의 마지막 일정으로 프라하성 안에 있는 성비투스 대성당과 스테인드글라스가 빼어난 성 비트 대성당을 둘러보았다. 현지 시간 저녁 7시 30분에 프라하공항을 출발하여 다음 날 낮 12시 30분에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프라하성 정문과 성비투스 대성당
성비트 대성당과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마무리]

열흘 간의 동유럽 견문을 마치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것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전원 풍경과 한 편의 동화 같은 마을들이 어디서나 쉽게 보고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마치 중세 시대의 어느 한 장면인 듯한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들판과 먼 산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힐링 그 자체로 다가왔다. 냉혹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신음하던 과거의 흔적들이 앙금으로 남을 만한데 오늘의 동유럽은 경제적으로는 다소 더디지만 전통과 문화의 본향으로 남아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 나침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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