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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여행기

여행 이야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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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2018년 8월에 처음으로 러시아 영토인 연해주를 다녀왔다. 러시아는 선사시대부터 여러 민족들이 터를 잡고 살아온 드넓은 지역으로 주로 동유럽 지방에서 기원하는 동슬라브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다. 옛 소련 지역에 나타난 최초의 국가는 9세기 중엽부터 볼가강 유역을 통치한 루스 카간국이다. 카간국은 동슬라브족을 지배하던 루스인들이 세운 국가로 9세기 후반에 키예프 공국으로 이어지며 동슬라브족에 동화되고 만다. 키예프 루스는 여러 제후국으로 분열을 거듭한 끝에 모스크바 대공국이 건국되는 13세기 후반까지 존속한다.

모스크바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분열된 여러 루스 공국들을 통합하여 현재 러시아의 직접적인 전신이 된 모스크바 대공국은 15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영토 확장을 시작하여 16세기에는 발트해까지 진출하였고 16세기 중엽 이반 4세 때부터 차르라는 군주의 칭호를 사용하며 러시아 차르국이 된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 후 차르에 오른 이반 4세는 제3의 로마 황제로서의 의미를 더하여 권력을 확대해 나갔으나 이반 4세 사후 러시아 차르국은 동란을 겪으며 혼란을 거듭하다가 17세기 초반 새로운 로마노프 왕조가 수립되어 러시아 제국의 기반이 된다.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 1세가 1721년에 세운 러시아 제국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존속한 군주제 국가로 남서부 지역의 우크라이나와 동부의 서시베리아 지역까지 영토를 넓혀 17세기 중반 무렵에는 당시 청나라의 변경지대인 아무르강까지 진출함으로써 유렵과 아시아 그리고 북아메리카의 세 대륙에 걸친 엄청난 영토의 대제국으로 성장한다. 

대영제국과 몽골제국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거대한 제국으로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으로 붕괴된 러시아 제국은 후진적 농업 중심 국가였으며 정교회와 귀족정치 그리고 국가주의가 합쳐진 군주국가였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1918년 볼셰비키들에 의해 황족과 귀족의 대부분이 처형되거나 쫓겨났으며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수립되어 1991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15개 공화국의 연합체로 구성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은 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동유럽과 아시아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도국으로 냉전 시대를 이끌어 갔다. 레닌과 스탈린 그리고 후르시초프 등의 공산당 서기장 등에 이어 1985년 서기장이 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독일의 통일과 동유럽의 독립이 이루어졌고 결국 1991년 공화국들의 탈퇴로 소련이 해체되어 오늘의 러시아에 이르고 있다. 

영원의 불꽃과 니콜라이 황태자 개선문

[첫째 날]

대구 국제공항에서 11시에 출발하는 항공편으로 3시간 15분 비행 후 블라디보스톡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시차가 1시간 빠른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자 우선 호텔에 여장을 풀고 첫 일정으로 극동함대 사령부가 있었던 항구 쪽을 방문했다. 솔제니친이 강제 추방 후 2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첫발을 내디딘 블라디보스톡 항구에는 그의 동상이 그 순간을 기념하며 서 있다. 동상 인근의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과 2차 세계 대전의 영웅이었던 잠수함 박물관 등을 둘러보고 중앙 광장과 니콜라이 황태자 개선문을 지난 후 버스로 이동해서 블라디보스톡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독수리 전망대에 올랐다. 전망대 위에는 러시아 문자를 만들었다는 키릴 형제의 동상이 항구를 바라다보고 있고 금각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조선의 한인 이민자를 기리는 신한촌비와 블라디보스톡의 명물 마약 등대를 둘러보았다. 호텔로 돌아와서 러시아 보드카를 곁들인 샤슬릭(러시아 전통 코치 바비큐 구이) 요리로 저녁을 먹은 후 젊음의 거리인 아르바트 거리를 찾아 간단한 안주로 맥주와 와인을 즐겼다.

금각교 전경과 신한촌비
키릴 형제 동상과 솔제니친 동상 그리고 마약 등대

[둘째 날]

호텔 조식 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해안 요새 중의 하나인 블라디보스톡 요새를 방문하여 러일 전쟁과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사진들과 대포 등을 구경하였다. 요새 박물관 옆에 있는 해안 시민 공원을 산책한 후 점심을 먹고 루스키 대교를 건너 루스키 섬으로 이동하였다. 소련 치하에서 비밀 도시로 군사 시설이 많았던 루스키 섬은 2012년 대교가 개통되고 APEC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많이 알려졌으며 이듬해 극동연방대학교가 회담장 건물들을 활용하고자 이전하였다. 해안포를 비롯한 군사 시설들을 둘러보고 잘 꾸며진 정원과 더불어 웅장한 극동연방대학교 건물들을 구경하였다. 다시 루스키 대교와 금각교를 건너 시내로 들어와서 블라디보스톡 출신의 세계적 배우인 율브리너의 생가와 동상을 둘러보고 하바롭스크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러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으로 향했다. 역전 광장에 우뚝 서 있는 레닌 동상과 함께 사진도 찍으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극동 종점인 블라디보스톡 기차역 안으로 들어서니 종점을 알리는 총 거리 9,288킬로미터라는 표지탑이 우리들을 맞는다. 4인 1실의 비좁은 2층 침대칸으로 되어 있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밤새 14시간을 달려 하바롭스크에 도착했다. 엄청 덜컹거리는 소리에 잠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지만 색다른 경험이라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블라디보스톡 표지탑과 극동연방대학교 건물
율브리너 동상과 레닌 동상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 종점 표지탑

[셋째 날]

하바롭스크 역에 도착하여 기차역 광장의 하바로프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레닌 광장으로 가서 산책한 후 점심을 먹고 성모 승천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과 인근의 러시아 혁명 기념비와 1858년 청나라로부터 아무르 강 이북의 영유권을 빼앗은 무라비예프 아무르스키 백작의 동상을 둘러보고 연해주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러시아 영토 박물관으로 들어가서 자연사 전시관과 역사관 등을 견문하였다. 박물관 안에는 시대별 생활 모습과 역사적 사건 등을 그린 그림들이 인상 깊었다. 영토 박물관을 나와서 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들을 추모하는 기념비와 영원의 불꽃을 보며 전쟁의 상흔과 평화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추모 기념비 옆에 있는 러시아 전체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정교회 성당을 구경하고 나서 아무르 강변으로 향했다. 흑룡강이라 부르는 아무르 강의 광활한 풍광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아무르 대교를 건너서 한 바퀴 둘러보고는 시내로 돌아왔다. 

무라비예프 아무르스키 동상과 성모 승천 대성당

하바롭스크에는 한국인 최초의 볼셰비키 여성 당원이었던 김알렉산드라의 발자취가 남아있다고 하여 그녀의 집무실이었던 무라비예프 아무르스키 거리 22번지 건물을 찾아보았다. 러시아 혁명의 와중인 1918년 일본군의 후원을 받고 있던 반혁명군에 의해 아무르 강가에서 처형당한 김알렉산드라는 임시정부 한인사회당의 창당 멤버이자 하바롭스크 소비에트 외무책임자로 레닌과 면담한 한국인 최초의 공산주의자였다고 한다. 연해주의 마지막 일정을 마치고 하바롭스크 시내에서 맥주로 아쉬움을 달래고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하바롭스크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으로 대구로 돌아왔다.

레닌 광장과 2차 세계 대전 참전 용사 추모비
아무르 강 풍광과 김알렉산드라 유적 건물

[마무리]

3박 4일간의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둘러보고 난생 처음 시베리아의 한 귀퉁이를 탐방했다. 우리나라와 이웃한 강국 중의 하나인 러시아는 오늘의 남북 분단을 가져온 원흉이었기에 종전 후에도 오랜 시간 우리와는 공식적인 교류가 없었다. 1990년 처음으로 양국 정상 회담이 열리고 그해 9월 양국이 정식 수교하게 됨으로써 상호 교류가 활발해졌다. 당시 러시아와의 수교가 중국에도 영향을 미쳐 2년 뒤인 1992년 한중 수교를 이끌어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4대 강국들의 형세가 마치 구한말을 연상할 정도로 복잡 미묘한 상황 속에 다녀온 러시아의 연해주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어 마치 이웃처럼 느껴졌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간도 지방과 이웃한 연해주에도 우리 선조들이 많이 거주해 살았지만 분단과 강제 이주로 인해 많이 흩어지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많은 교민들이 살고 있어 러시아의 변방이 아니라 미래 한국의 이웃으로 한민족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날이 곧 오리라 믿으며 연해주 여행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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