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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여행기

여행 이야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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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천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은 1521년 스페인의 마젤란이 발견하고 정복하기 전까지는 뚜렷한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는 부족 국가였다. 중국과 가까운 까닭에 약간의 왕래가 있었고 인도나 말레이계 사람들이 표류하다가 정착하기도 했지만, 어느 정도 역사가 드러난 것은 마젤란 이후 스페인이 북부와 중부 지역을 점령한 16세기 이후부터다. 그렇지만 이슬람 세력이 강했던 남부는 마젤란 일행을 격퇴하며 유럽인들에게 완전히 점령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도 반군의 근거지가 되고 있다.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거의 350여 년 동안 필리핀은 스페인의 지배 하에 있었지만 몇 차례의 반란이나 전쟁은 있었다. 17세기 초의 중국인 반란과 18세기 중반의 영국 동인도회사의 마닐라 점령이 있었고 남부 이슬람 세력과의 모로 전쟁은 식민지 시대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다. 18세기 이후 고등교육의 확산과 19세기 자유주의 사상의 유입으로 19세기 말에 필리핀 원주민들의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세 리잘과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등이 스페인으로부터의 필리핀 해방을 위한 독립운동을 활발히 펼쳤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뜻하지 않게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결과로 미국이 필리핀을 양도받게 된다. 그 후 미국이 일본과 맺은 가즈라-태프트 밀약에 의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우리나라를 서로 식민지로 삼아버린 비극의 역사를 우리와 함께 공유하고 있다. 세계 제2차 대전의 발발로 인해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잠시 일본군이 점령하였으나 일본의 항복으로 다시 미군정을 거쳐 1946년에야 비로소 독립정부를 구성하게 된다.

1521년부터 1898년까지 스페인 지배 기간 동안 대부분의 필리핀 사람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오늘날까지도 80% 이상이 성당에 다니며, 미국이 점령했던 1898년에서 1946년까지 불과 48년 동안 공립학교를 통해 필리핀 전역에 보급된 영어가 공용어로 자리 잡게 된다. 사실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은 언어 소통의 문제가 심각했으니 어찌 보면 영어로 통합을 이룬 셈이다. 1946년 독립 이후 막사이사이와 같은 지도자도 있었지만 1965년부터 1986년까지 필리핀을 통치했던 마르코스 정권은 결국 피플 파워 혁명으로 물러나고 말았다. 한때 일본에 이어 아시아 2위의 경제 대국이었던 필리핀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지난 2016년 1월에 이어 비슷한 여정으로 다녀온 이번 2019년 1월의 필리핀 여행기를 남긴다.

[첫째 날]

인천공항에서 오전에 출발하는 필리핀 항공편으로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 공항에 도착하니 마침 점심시간이라 공항 근처 '뷔페 101'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상당히 고급스럽고 규모가 큰 뷔페식당인데 내국인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식사 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몰한 미군 장병들의 묘지를 방문했다. 기념관 벽에는 수 만 명의 전몰장병들의 이름과 출신지가 빼곡히 새겨져 있다. 미국의 애국심과 역사의식이 그대로 잘 드러나 있어 부러웠다. 우리나라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의미에서 필리핀 주재 한국문화원을 찾았다. 마침 '아름다운 우리 한글전'이라는 서예전이 열리고 있었고, 문화원 홍보팀에서 상세한 프레젠테이션으로 한국문화원의 역할과 행사들을 소개해 주었다.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일정을 마치고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카비테주 다스마리냐스에 있는 숙소로 와서 여장을 풀었다.

2차대전 미군 전몰 장병 묘지와 필리핀 한국문화원 전시실

[둘째 날]

미리 예정되어 있는 다스마리냐스 종합고등학교(Dasmarinas Integrated Highschool)를 방문했다. 환영 행사와 수업 참관을 하고 도서관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오후 활동으로 학생들의 합동 수업을 참관했다. 공립학교로 주니어 4개 학년과 시니어 2개 학년이 함께 6년제로 운영되며 전체 학생수가 무려 9천여 명에 이른다. 2부제와 일요스쿨까지 운영하며 교직원 수도 45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전체 인구수에 있어 남녀 성비는 별 차이가 없는데 비해 여성들의 학구열이 매우 높아 학교 내 성비는 거의 7:3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학교 내 환경은 우리나라에 비해 많이 낙후되어 있으나 상당히 자율적이며 개방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카비테 주에서도 가장 큰 도시이며 필리핀 전체에서도 11번째로 큰 도시인 다스마리냐스는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다.

다스마리냐스 종합고등학교 복도 교실 수업 장면과 운동장 전경

[셋째 날]

오늘은 필리핀 제일의 명문 사립대인 라샬대학교를 방문했다. 프랑스의 성인 라샬이 세운 가톨릭 계열의 학교로 필리핀 전역에 16개의 라샬 학교가 있다고 한다. 다스마리냐스 라샬대학교는 학교 규모도 엄청나다. 캠퍼스 전체를 한눈에 조망하기도 어렵고 교내에서는 차로 이동하며 부설 고등학교와 부속병원도 있어 매머드 학교로서의 위용을 자랑한다. 학교 내에 성당과 박물관이 있으며 도서관과 북스토어 매장도 눈에 띈다. 특히 스페인 풍의 대저택을 그대로 보존하여 박물관으로 개방한 건물은 당시의 생활 풍습과 고풍스러운 가구들이 인상적이다. 오래된 성당 옆에는 필리핀 초대 대통령이었던 에밀리오 아기날도가 카비테 시장으로 있으면서 독립운동을 시작한 사무실이 아직 남아 있다. 아기날도는 호세 리잘의 영향을 받아 안드레스 보나파시오의 비밀결사단인 카티푸난의 지도자로 활약하면서 혁명 조직의 지역 책임자가 되기도 했다. 그 후 보나파시오를 축출하고 1897년 혁명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나 미국과의 전쟁 중인 1901년 체포되어 남은 여생을 카비테의 초대 대통령궁(현재 박물관)에서 은둔생활을 이어가다 1964년 사망했다고 한다. 학교 방문 후 '케니 로저스'에서 갈비 스테이크로 점심을 해결하고 카비테 주 청사와 코이카 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한국-필리핀 우정 병원을 방문했다. 길지 않은 필리핀 현대사의 여러 흔적들을 살펴보며 오늘의 우리에게도 좋은 교훈이 된 하루였다.

라샬대학교 박물관 내 라샬 동상과 학교 내 성당

[넷째 날]

조식 후 카비테 주의 남쪽에 위치한 따가이따이와 바탕가스 해안으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필리핀 커피 메카인 카페 아마데오 본점에 들러 원두커피 수확과 처리 과정들을 견문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인 따알 화산을 전망하러 '피플스 파크'에 올랐다. 따가이따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이 야외 전망대는 과거 마르코스 대통령의 영부인이었던 이멜다가 별장으로 사용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도색이나 수리를 하지 않고 관광용으로 개방하고 있다. 영욕의 흔적으로 남겨 교훈으로 삼고자 일부러 방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짧은 거리지만 지프니를 타고 올라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마따붕까이 호핑 투어를 위해 바탕가스로 가는 길에 머쉬룸 버거로 점심을 해결했다. 따가이따이에서 동쪽으로 한참 가다가 나오는 바닷가에 위치한 마따붕까이에서는 즐거운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뗏목 위에 앉아 고기도 굽고 새우도 구워가며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정취가 매우 이국적이고 평화로웠다. 때마침 근처 바닷속에서 갓 잡은 문어 한 마리를 데쳐서 함께 음미하는 행운도 있었다. 환상적인 마따붕까이의 낙조를 감상하며 어둑어둑한 길을 달려 다시 다스마리냐스 숙소로 돌아왔다.

피플스 파크에서 바라본 따알 화산과 마따붕까이 해안의 뗏목 배
환상적인 마따붕까이 낙조

[다섯째 날]

필리핀 여행 마지막 날이라 일찍 서둘러 마닐라로 향했으나 금요일이자 밸런타인 다음 날이라서 그런지 마닐라 대성당까지 가는 데 거의 두 시간이나 걸렸다. 마닐라의 교통 체증은 세계적이다 보니 감수해야겠지만 사회간접자본 확충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마닐라 대성당 주변을 인상적인 마부의 영어 설명과 함께 마차로 한 바퀴 둘러보고 공항으로 향했다. 두 번의 필리핀 방문으로 필리핀이 많이 낯이 익은 느낌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저소득층이라 상대적 박탈감이 덜해서인지 사람들은 비교적 밝고 낙천적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덕택에 우리나라에서도 어학연수로 많이 가는 나라 중의 하나라서 그런지 한국인들도 많이 찾고 있으며 한류의 영향인지 상당히 호의적이다. 휴양과 골프를 위한 여행이 성행하다 보니 시골스러운 소도시나 일반 시민들을 접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지만 일부 마을은 우리나라 유학생이나 은퇴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겨울철 휴양지로서 한적하고 평화로운 필리핀 어느 바닷가에서 삶의 여유를 만끽하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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