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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세상

스마트 세상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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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노트북에 아이폰 핫스팟을 연결해서 원격 강의를 듣는 지금 이 세상은 참으로 편리하지 않은가? 컴퓨터가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오늘 문명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처음 컴퓨터라는 새로운 기기와 마주한 것은 80년대 후반이었다. 그 당시에는 8비트 애플컴퓨터와 16비트 IBM 컴퓨터로 간단한 워드나 계산 작업에 활용하였다. 개인용 컴퓨터가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시기라 상당히 고가에 속하는 장비였다.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AT 컴퓨터가 그 당시 가격으로만 200만원에 호가할 정도였다. 요즘 물가로 따지면 봉급의 몇 배가 되니 거의 소형차 한 대 값이다. 9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자 컴퓨터의 보급이 확산되어 많이 내려갔지만 웬만한 각오 없이는 쉽사리 구매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한두 달 월급을 모아야 겨우 컴퓨터 한 대를 살 수 있었고, 프린터를 가지려면 또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안동 인근의 중학교에 근무할 때이다. 맡은 일이 기획이다 보니 여러 가지 워드 작업이 필수였다. 학교에서 못 다한 일들은 집에서도 해야 될 형편이라 컴퓨터를 하나 장만하고 싶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아내의 동의를 구했다. 무조건 반대였다. 몇 번 설득을 해도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집에서까지 일할 필요가 어디 있냐고 했다. 한 살 터울로 낳은 두 딸을 키우기가 벅찼던 시절이라 이해는 되었지만 한번 컴퓨터에 꽂힌 내 마음도 접기는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비상수단을 발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제법 심각했다. 금요일 저녁부터 단식 투쟁에 들어가서 일요일 저녁 때 결국 확답을 얻었다. 내 생애 첫 컴퓨터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컴퓨터에 빠져 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새로 구매한 프로그램을 설치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하고, 컴퓨터가 다운되면 영문을 몰라 애를 태우기도 했다. 한 번은 새로 구한 ᄒᆞᆫ글 1.5버전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설치했는데 도무지 반응이 없었다. 마침 인근 초등학교에 컴퓨터 박사라는 선생님이 계신다고 해서 찾아 갔다. 지금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있는 분인데 컴퓨터에 앉아 몇 번 키보드를 두드리니 금방 해결되었다. 그 때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며 컴퓨터를 배워 나갔다. 나의 컴퓨터 스승인 셈이었다. 그 후로는 함께 컴퓨터 동호회 활동도 하며 프로그래밍을 배우기도 했다. 그 당시 컴퓨터 관련 서적 구입에도 컴퓨터 몇 대 값이 들어갔으니 상당한 투자였다.

이런 투자 덕분인지 몰라도 컴퓨터 관련 기능들이 제법 몸에 익어 갔다. 그 다음 학교에서는 정보부장을 내리 맡기도 하고, 사소한 고장이나 정비는 스스로 다 해결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동료들이 집에서 고장 난 컴퓨터를 가져 오면 고쳐 주기도 하고, 워드 프로그램을 다루다 막히면 해결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어느 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컴퓨터 매니아가 된 것이다. 그 동안 업그레이드한 컴퓨터나 주변장치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여러 소프트웨어들도 새 버전이 나올 때마다 정품을 구매했다. 하드웨어를 분해하고 소프트웨어를 익히며 보낸 그 시절이 어쩌면 오늘의 편안함을 가져다 준 것이 아닐까. 아마도 이천년대 중반까지 중년의 사십대를 할애한 근 십 년 동안의 컴퓨터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 큰 이정표가 되었다.

아침 출근길에 승용차 안에서 모바일 웹 강의를 듣는다. 사무실에 도착해서는 서울 출장 때 타고 갈 KTX 승차권을 역시 모바일에서 예매하고 결제한다. 잠시 쉬는 휴식 시간에는 음악 파일을 열어서 감상을 한다. 몇 가지 채팅 앱에 뜨는 새 글들을 읽어보고는 댓글을 단다. 오후가 되어 한가해지면 TV앱을 통해 어제 못 본 드라마를 다시 본다. 웬만한 소형 카메라 뺨치는 폰 카메라에다가 인터넷 검색은 기본이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이패드를 들고 전자책을 펼쳐든다. 우리 집에는 데스크탑이 두 대가 있고 노트북도 두 대나 있다. 식구들 모두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니 채팅 그룹으로 묶어서 어디에 있든 실시간으로 대화한다. 하드디스크에 담긴 음악 파일로 웬만한 음악은 다 컴퓨터에 연결된 앰프와 스피커로 듣는다. 영화 파일도 마찬가지로 컴퓨터와 스마트 TV를 HDMI로 연결하여 무한정 감상한다. 가끔씩 게임도 즐기며 여가 시간을 보낸다. 밤이 되면 아이패드에서 나오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잠자리에 든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스마트 기기가 이제는 나의 충실한 동반자가 되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스마트 기기의 교체 주기도 그만큼 짧아져서 이제는 거의 분기별로 바뀐다. 이진법의 숫자 두 개가 이루어내는 오묘한 기계는 마침내 세상을 지배하는 시스템의 중심에 서 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이 바로 반도체 발견이 아닌가 한다. 전기가 통하고 안 통하는 단순한 이진법을 무한한 코드로 바꾸어, 형태와 색깔뿐만 아니라 소리와 움직임까지 제어하는 컴퓨터의 끝이 과연 어디로 향할 것인지 일개 범부로서는 짐작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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