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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걷기의 미학

에세이 마당

by 전하진(全夏辰) 2020. 9. 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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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과연 언제부터 야생의 맨발에서 벗어나 신발을 신게 되었던 것일까. 문헌에 의하면 기원전 2,000년 경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파피루스를 엮어서 요즘의 샌들 비슷한 신발을 만들어 신었다고 한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인류는 맨발을 보호하는 발싸개 같은 것을 도구로 사용했을 것이다. 중세에 들어와서는 도시화로 인해 거리가 오물로 넘쳐 남성들도 하이힐을 신었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는 나막신 형태의 신발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처럼 신발은 인류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 몸의 일부처럼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되고 말았다.

야생의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은 여러 가지 보호 장비들을 마련함으로써 자연 상태의 초기 인류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동안 야생의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적응과 진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야생으로부터의 탈출구가 되었던 도구와 언어의 사용이 오늘날에 와서는 자연과의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는 역작용을 가져오게 되었다. 편리한 도구들의 사용으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와 번영을 누리며 지구촌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오늘의 풍족한 문명 생활을 위한 대가로 문명의 역작용으로 인한 폐해를 초래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때가 되었다.

우리 주변을 한번 돌아보면 불과 반세기 만에 대도시 지표면에는 흙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도로가 포장되고 마당이 시멘트로 덮이고 보도 블록이 온 사방에 퍼져 있어,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하루 종일 생활하는 가운데 흙 한 줌 묻히지 않고도 살아가는 환경이 되고 말았다. 만물의 구성 요소인 불과 물과 바람과 흙 중에서 근대화가 가져온 문명의 폐해로 가장 많이 사라진 게 흙이 아닌가 한다. 농촌의 흙마저도 인공 비료로 신음하고 있는 형편이니 자연을 벗 삼는다는 말은 이제는 옛말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많은 도시인들의 로망이 전원주택에서의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사라진 흙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인류가 흙에서 멀어지게 됨으로써 그 역작용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되고 오히려 새로운 질환들을 얻게 되었다. 통계에 의하면 전체 학생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문명화의 병폐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부적응으로 인해 제대로 학업을 수행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과거에 비해 절대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ADHD 증후군이나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고, 지적 신체적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도 지난 반세기 전에 비해서 눈에 띄게 많아진 것이 문명화의 역작용 특히 자연과의 불균형으로 인해 초래된 결과가 아닐까. 각종 성인병도 따지고 보면 문명의 부산물이자 폐해가 아닌가. 야생의 자연환경이 주는 혜택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난 수만 년 동안 영장류로의 진화를 가져온 원동력이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류는 자연을 거스르며 끊임없이 극복한 결과 현대인들에게 여러 가지 병폐들이 유발되고 있다.

이제는 다시 야생의 자연환경을 복원하자는 움직임과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앞으로 우리 인류 문명의 불시착을 막으려는 몸짓이 필요할 때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백여 일 동안 매일 맨발로 맨땅을 걷게 되면서부터 다시금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신발로 단절되었던 흙과의 접촉은 놀랄 만큼 내 몸을 변하게 하고 자연의 숨소리를 듣게 했다. 단지 신발 하나 벗었을 뿐인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야생의 감각과 몸의 활력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맨발로 하루 한 시간 정도 걷기 시작한 지 벌써 넉 달이 지났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맨발로 걸어온 시간들이 내게는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아침잠이 많았던 내가 새벽에 바로 일어나게 되었고 주변 사람들 얘기로 뱃살도 좀 빠졌다고 한다. 맨발로 걷다 보면 참으로 신기하게도 조용한 명상에 빠져든다. 걷기 시작하고 얼마 동안은 이것저것 잡념들로 생각이 넘쳐나지만 종반부로 향해 가면 차츰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지구의 깊은 곳에서 분출되는 거대한 기운이 내 발바닥을 통해 올라오는 느낌과 내 몸 속에 있던 쓸데없는 전자기들이 땅 속으로 배출되는 느낌이 그런 평화를 가져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숙명일진대 그동안 우리는 너무 자연을 멀리한 것이 아닐까. 

앞으로 힘닿는 날까지 맨발로 맨 흙을 걸으며 내 삶의 중심에서 내 몸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삼으리라. 맨발 걷기는 자연의 건강한 균형을 되찾게 해주는 보약이 아닐 수 없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모토를 행동으로 옮기는 첫걸음이자 노자의 '무위자연'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는 통로가 맨발 걷기의 철학이자 미학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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