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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여는 아침

에세이 마당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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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었던 공자님은 '시(詩)로 시작하고 예(禮)로 서고 악(樂)으로 완성한다.'라고 할 정도로 음악의 절대적인 힘을 신봉하였고, 19세기 말의 월터 페이터도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라고 했으니 음악의 세계는 참으로 오묘하기가 그지없다. 예부터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어도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고 했다.

노래와의 인연은 대학 새내기 때 찾아왔다. 학창 시절에는 음치까지는 아니어도 왠지 음악은 내게 먼 나라 세상과 같았다. 음악 시간이 별로 즐겁지도 않았고 노래도 잘 부르지 못했다. 그런 내게 느닷없는 고등학교 선배님의 권유로 노래 부르는 서클인 합창단에 무작정 들어가게 되었다. 단원 모집 시기도 지나 별다른 오디션 없이 특별 입단이 된 셈이었다. 아마 사전 테스트가 있었으면 합창단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대학 신입생 시절의 혼란 속에서도 합창단 연습이나 행사를 통해 교우 관계도 넓히고 잠재되어 있던 발성의 한계도 극복하면서 어느새 노래가 내 삶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동아리실에서의 열정적인 노래 연습이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남아 캠퍼스를 지나며 친구들과 함께 흥얼거리던 가락들이 늦은 저녁의 아스라한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가면 내 마음은 한 없는 희열로 벅차올랐다.

당시 시민회관에서 열린 대학 합창제에 참여하여 불렀던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와 행사 때마다 단골 메뉴로 불렀던 지도교수님의 창작곡인 '잔해'와 '망각'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아련하게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치기 어린 몇몇 친구들과 앞산 공원에 올라가 숲 속에서 목이 터져라 불러대던 노래들도 하나하나 내 노래의 목록들이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얻은 부산물이 또 하나 있다. 그 시절 유행하던 통기타에 반해 반년을 씨름한 끝에 제법 기타를 다루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 익혔던 '내가'와 '젊은 연인들'은 눈 감고도 반주하면서 부를 정도이니 음악의 능력은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연전에 입문하다가 만 색소폰 연주도 여유가 되면 다시 불어 볼 생각이다. 그 옛날 공자님도 거문고를 즐겨 연주하면서 음악을 통해 곡을 지은 이의 사람됨을 알 정도의 경지에 올랐으니 음악의 매력은 가히 상상을 넘어선다.

합창단 활동으로 얻게 된 취미로 클래식에서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즐겨 듣게 되었다. 한때는 클래식 전집 세트를 구해서 듣기도 하고 영화 음악을 총망라해 놓은 LP판도 사서 모으기도 했다. 신혼 초에는 거금을 들여 오디오 세트를 방 안에 두고 이런저런 음악들을 즐겨 감상하였다. 지금은 엄청난 양의 디지털 파일로 된 클래식과 팝송들이 외장 하드에 담겨 있어 언제라도 쉽게 감상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음악도 즐기는 방식이 사뭇 달라졌다. 클라우드에 담아 놓은 엄청난 음악 파일로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무한정 감상하는 시대가 되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휴대폰과 연결하면 바로 카플레이로 잔잔한 비발디의 '사계'부터 요즘 인기 있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들도 생생하게 울려 퍼진다. 과거 7080 세대의 앨범을 찾아 대학 가요제 노래들도 원곡 그대로의 감동으로 음미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집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블루투스로 연결되는 하이파이 스피커를 통해 한국 가곡에서부터 팝송과 가요까지 원곡 앨범에서 바로 들을 수 있으니 음악의 세계는 항상 열려 있다.

한 동안 생업에 종사하면서 잊혔던 노래와의 인연이 연전에 다시금 맺어졌다. 물론 그동안에도 동료들이나 친구들과의 여흥으로 노래를 즐겨 부르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성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등학교 친구의 권유로 남성 중창단에 들어가면서 다시금 노래가 내 삶의 활력소가 되기 시작했다. 중창 연습으로 가곡들을 마음껏 부르고 지난해에는 가까운 친지들을 모아 놓고 제법 그럴싸한 연주회도 열었으니 이제는 노래가 새로운 삶의 이정표가 될 정도이다.

그동안 잘못 길들여진 발성들을 바로 잡고 새로이 접하게 된 소위 벨칸토 발성이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음악을 통해 얻는 감흥이 날로 증폭되고 있다. 거의 모든 스포츠와 취미에서 힘을 빼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골프를 칠 때도 힘을 제대로 빼고 치면 거의 중급 수준은 넘어설 정도이니 발성에서도 성대에 힘을 주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호흡을 원활하게 유지하면서 공명을 이루며 울리는 청명한 고음의 한 소절은 마치 선사에서 깨우침을 얻은 수도자의 외침 같이 뜻깊은 감흥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연전에 동생의 권유로 입문한 성악 아카데미를 계기로 가곡 공부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독일 가곡의 대성악가이신 교수님의 열정 어린 가르침으로 이제 겨우 노래의 걸음마를 배우는 중이지만 성악을 대하고 느끼는 새로운 경험에 매일매일이 새롭다. 언젠가는 가곡과 아리아를 멋지게 부르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아카데미와 함께 노래의 열차를 타고 힘차게 달리고 싶다.

더구나 오랫동안 바깥으로 돌다가 제 자리를 찾아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성가대의 일원으로 성스러운 노래들을 매주 부르게 되니 마음의 평화도 함께 찾아온다. 성가대의 화음으로 성탄과 부활의 기쁨을 가슴으로 만끽하며 여러 교우들과 은혜와 축복을 함께 나누기에 너무나 행복하다. 아침이면 울려 퍼지는 노래가 천사의 합창처럼 내 마음을 밝히고 함께 부르는 노래들로 온 세상이 더욱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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