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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

에세이 마당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2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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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일가친지들을 자주 찾아다녔다. 고모가 두 분, 이모가 세 분, 외삼촌이 두 분이었으니 사촌들도 많았다. 반세기가 흐르는 동안 지금은 고모 한 분, 이모 한 분 그리고 외숙모님 한 분만이 살아 계신다. 큰아버지가 계셨다고는 하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자식 없이 돌아가셨으니 아무 기억이 없다. 큰고모님은 화원 홈실에 사셨는데 내가 어릴 때에 돌아가셔서 흐릿한 기억만 남아 있다. 작은 고모님은 지금 혼자 구미에 사시는데 자식이 없으셔서 옆에서 보기에도 적적하시다. 남아 계신 분들 모두 다 세월의 흔적을 속일 수는 없는가 보다.

사촌형제가 없는 친가와는 달리 외가 쪽은 육 남매였으니 자식들도 많았다. 지금도 외가 쪽 사촌들은 해마다 한 번 씩 모임을 가질 정도로 우애가 돈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 방학이나 명절이면 이모 집으로 외갓집으로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더구나 이종사촌 동생 둘은 고등학교를 우리 집에서 다니기까지 했으니 사촌이라도 형제처럼 가까웠다. 외가 쪽 사촌들이 다 모이면 스물둘이나 되고 그 식솔들까지 합치면 한 자리에 다 모이기도 어렵다. 저마다 살아온 날들이 다 다르지만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다. 연례 모임에서 만나면 지나간 시절을 이야기꽃 삼아 세월을 낚는다. 모두가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 없기에 아련한 그리움에 젖기도 한다.

중학교 다닐 때 방학을 맞아 가창에 있는 정대 이모네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 고향이기도 한 정대는 가창댐에서 한참 들어가는 산골 마을이다. 비슬산 정상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물도 좋고 공기도 맑았다. 동생들과 같이 며칠 지내다 개학날이 다가와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눈이 엄청 내렸다. 하루에 한두 번 다니던 버스마저 끊겨 하는 수 없이 사촌들과 같이 걸어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 되지 않은 거리지만 그때는 아주 멀게만 느껴졌다. 길모퉁이를 돌아도 구비는 끝이 없었다. 한 모퉁이만 돌면 용계동이 나오리라 기대하지만 인적도 거의 없는 길모퉁이가 섬찟하게 막아섰다. 한없이 이어지는 눈 쌓인 계곡길은 가창댐에 이르러서야 끝이 났다. 지금도 정대 가는 일이 있으면 그때 일이 떠올라 골짜기 구비길을 눈여겨본다.

수성못 근처에는 큰 이모네 집이 있었다. 일구는 논밭도 많았고 수십 가구 집세를 받을 정도니 인근에서는 큰 부자였다. 재산은 많지만 인심이 야박하여 발길이 뜸했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 이모 내외가 다 세상을 뜨시고, 얼마 후 맏형인 이종사촌 형님도 일찍 돌아가신 후에는 집이 금방 쇠락해졌다. 그 많던 재산은 형수에게로 다 가고, 나하고 동갑내기인 이종사촌은 요즘도 형편이 말이 아니다. 딸네들도 셋이나 있지만 누구 하나 부모덕을 못 보고 있다. 살아생전에 베풀어야 후대가 잘 된다는 옛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적선지가(積善之家)에는 필유여경(必有餘慶)이 아닌가! 베푼 만큼 다시 돌아온다는 평범한 사실이 새삼 깨우침으로 다가온다.

고향인 월배 원덕 안쪽 수밭골에는 막내 이모가 살고 있다. 처음에는 어렵게 자갈밭을 일구며 사셨지만 마음이 후덕하셔서 자주 놀러 다녔다. 고향 가는 일이 있으면 늘 수밭에 들렀다. 박씨 집성촌이라 마을 인심도 좋았다. 높은 기와집 아래 초라한 초가집 살림이었지만 무엇이든지 잘 챙겨주셨다. 그러다 세상이 변하니 쓸모없던 자갈밭이 복덩이가 되었다. 원덕 앞 너른 벌판이 도회지가 되면서 지금은 건물만 세 채를 갖고 계신다. 요즘도 철 따라 채소나 고추 같은 걸 보내 주시고, 이모부께서 살아계실 때는 선친 산소도 많이 돌봐 주셨으니 그 복이 어디 가겠는가? 자식들이 다 부모 은덕으로 복을 누리니 누구나 베풀고 볼 일이다.

세월은 모든 것을 다 앗아간다. 고모부와 이모부, 외삼촌들도 다 세상을 뜨셨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 이팔청춘도 한순간이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살아생전에 필요한 게 재물이지 죽은 다음에는 무슨 소용이 있으랴. 세월은 한순간이고 흔적은 오래 남는다. 아등바등 인심 잃어가며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경주 교동 최부자집 얘기가 아니라도 자비와 자선은 세월의 약이다. 자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보험이 바로 베풂이다.

반평생을 넘어 살아온 날들이 세월에 묻혀 버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돌아가신 분들의 흔적이다. 어느 시인은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떠난 이들의 후광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세월은 흘러가도 흔적은 남는다. 굳이 불가의 연기(緣起)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의 나는 흘러간 세월의 결과다. 그게 업보라면 업이고 무상(無常)이라면 덧없다. 삶의 한가운데에서 흘러간 반세기를 새김질하며 내게 남은 세월의 흔적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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