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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마당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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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이 눅진하지 못한 탓인지 집에 붙어 있을 때가 거의 없다.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는 일이 월례 행사만큼이나 뜸하다. 어찌 보면 외식이 많은 게 천성 탓이 아니라 모임이 많은 탓이리라.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이런저런 모임이 생겨났다. 가장 먼저 생기는 게 학교 동창회다. 학연을 따지는 사회 분위기가 숙지지 않는 한 동창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이 직장에서 맺어진 동호회 모임이나 친지들의 모임이 주류를 이룬다. 지금까지 거쳐 간 숱한 모임을 통해 나름대로 나 자신의 사회적 성장을 이룬 게 아닐까. 대화와 소통을 통해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한 행사 참여로 안목도 깊어진다.

초등학교 동기 모임에 처음 나간 것은 고등학교 다닐 때이다.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몇몇 친구들이 모임을 마련했다. 중고등학교를 남학교만 다녔기에 동기 모임에서 만나는 여학생들이 조금은 서먹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반창회가 이어졌지만 그 후로 각자 제 배필을 찾아 가정을 이루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지금은 연례행사로 만나는 동기회가 삶의 바탕을 여물게 한 초등학교 시절을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고 있다.

중학교 동기회는 졸업한 지 20년이 지나서야 마련되었다. 대구에서는 몇 안 되는 중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 참여를 위해 동기회가 결성되었다. 체육대회 전야제를 시끌벅적하게 치르고 나면 그다음 날 행사에 지장이 많았다. 지금은 격월로 모임을 가지며 어릴 적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운다.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동심으로 돌아간다. 6년 전부터 총무를 계속 맡다 보니 빠질 수는 없지만 동기들 간의 소통을 위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함이 앞선다.

고등학교 동기들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모임을 가져왔다. 대구를 떠나 있는 동안은 총동창회 체육대회 때 몇 번 참석할 정도로 그리 적극적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0년 전에 우리 기수가 총동창회 체육대회 주관 기수로 행사를 치르면서 동기회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구 유수의 학교인지라 지금도 총동창회는 면모를 과시할 정도로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우리 동기회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군인의 길로 들어선 동기들은 사령관이나 장성급이 되어 있고, 경찰청장이나 조달청장으로, 대기업 사장이나 부사장 등으로 출세한 친구들도 많다. 5년 전부터 동기회 총무로 500명이 넘는 친구들의 연락을 맡으면서 인간관계의 폭도 넓어졌다. 

대학교 동기들은 졸업하자 말자 바로 모이기 시작했으니 거의 30년이 다 되어간다. 초기에는 매달 모여서 회식하며 오락도 즐겼다. 남학생들은 따로 친목계도 만들어 상호부조도 꾸준히 하였다. 참으로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인데 요즘은 일 년에 몇 차례 모임을 가질 뿐이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고 있기에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만나다 보니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해묵은 우정을 간직하고 있다. 동기회 회장이자 총무를 윤번제로 하다 보니 모두가 한두 번씩은 다 맡았다. 본인 결혼 축의금 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자녀들의 결혼 축의금을 받을 나이가 되었다. 대학 동기회와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나 자신의 안목도 더 넓어진 게 아닐까.

교직에 들어서면서 전문성을 신장하기 위해 몇몇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국어교사들의 모임인 국어교과연구회와 글쓰기 모임인 문예교육연구회에 오랜 시간 참여하면서 총무를 맡기도 하고 회장도 맡게 되었다. 양 모임의 총무를 다 거친 덕에 웬만한 국어교사들은 다 알고 지낸다. 연구회 활동으로 해외 연수까지 다녀왔으며 역대 총무들은 거의 다 승진까지 했을 정도니 모임이 주는 혜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같은 길을 걸으면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인지라 언제나 활기차고 화기애애하다. 일 년에 두 차례의 연수회를 통해 정보도 나누고 친목도 다진다.

일가 어른들은 일찍부터 문중 모임을 가지며 친목을 다졌다. 매달 일정액의 회비를 내며 집집마다 윤번제로 모임을 주최했다. 이제 어른들 대부분은 돌아가시고 없지만 모임은 계속되었다. 우리 세대가 주축이 되어 매년 선산 벌초나 묘제를 주선하기도 한다. 20여 년 전부터 이 모임의 총무를 맡아 제반 연락을 담당하고 있다. 해마다 봄에 한 번 모이고 음력 8월에는 벌초하러 음력 10월에는 묘제를 올리러 모인다. 모두 7대조 할아버지의 후손들로 열성을 다해 조상을 모시는 일에 앞장선다. 저마다 생업에 바쁘더라도 문중 일로 함께 힘을 모으다 보면 알게 모르게 조상의 음덕을 보게 된다.

외가 쪽 사촌들과는 어릴 때부터 자주 들락거렸다. 이모집이나 고모집, 외갓집을 뻔질나게 다니다 보니 어느 날인가 모임이 만들어졌다. 거의 20년 가까이 모임을 가지면서 어른들의 칠순과 팔순 기념 잔치도 열어드리며 사촌들의 회갑도 챙기고 있다. 외조부와 외조모 사이의 6남매 밑으로 모두 22명의 사촌들 모임이니 성씨는 각기 달라도 마음은 한결같다. 들어온 며느리나 사위들도 함께 자리하니 세상사 이야기보따리들이 풍성하다. 이제는 우리 세대를 지나 자녀들이 모임의 빛이 되어 3대가 함께 어울리니 세월의 힘을 느낀다.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보며 지나 온 시절을 돌아보는 즐거움도 인생의 낙이 아닐까.

그 밖에도 이런저런 연유로 함께 삶을 나누는 모임을 들자면 한이 없다. 포항에서 다니던 학교를 인연으로 맺어진 모임이 두 개가 있고, 테니스를 즐기며 매주 모이거나 매월 만나는 모임도 있다. 구미나 영천에서 함께 학교를 다녔던 몇몇 선생님들의 모임도 정기적으로 일정액의 회비를 내며 함께 모이다 보니 가족에게 미안할 때가 많다. 최근에 와서는 매주 사흘은 취미와 전문성을 살리는 일에 할애하다 보니 더더욱 집에서 저녁 먹기가 어렵다.

그래도 지금의 나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숨은 원동력은 모임의 힘이 아닐까 한다. 모임의 한 귀퉁이에서 존재를 자각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으니 내게는 이 모임들이 오늘의 나를 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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