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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와 운명

종교와 철학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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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자유 의지에 따라 임의적으로 살아갈 뿐인가? 이러한 물음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던져진 영원한 숙제라 할 수 있다. 한 치 앞 미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면 한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는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내일을 알 수 없기에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하기가 그지없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앞날이 더 궁금하기는 인지상정이 아닌가. 그래서 까마득한 시절부터 미래의 운명을 밝히려는 인간의 노력은 끝이 없는가 보다.

예부터 점성술이나 명리학이 뭇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고대인들은 갑골의 쪼개진 모양으로 길흉을 점치거나, 별자리를 보고 운명을 예측하기도 했다. 인류 역사의 초창기에는 무당의 예언이 집단의 운명을 좌우하지 않았던가. 개인에 있어서도 음양오행에 바탕을 둔 명리학이 있어왔다. 여기서는 태어난 때의 간지로 이루어진 여덟 글자로 운명을 해석한다. 사주팔자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최근에는 상당히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오행의 상생과 상극 관계를 빗대어 다양한 운명과 성격들을 만들어 낸다.

친구 중에 제법 역술인으로 입지를 굳힌 도사가 있다. 연전에 내 사주를 보여주며 풀이를 부탁했다. 그 당시에 대운을 들먹이며 앞으로 관운과 재운이 있다고 했는데 거의 맞추었다. 예상 밖으로 승진을 했고 몇 년 전에 미분양이던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현재 시세가 분양가에 비해 무려 배나 더 올랐다. 그때 신천 옆에 살고 있는 어느 역술인에게도 찾아 간 적이 있는데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운명에 대한 해석이 같다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사주 속에 내 운명이 담겨 있다는 말인가. 도사 친구는 사주가 거의 맞다고 하니 참으로 신통하다.

명리학에서는 자신의 운명은 태어난 날의 천간에 있다고 한다. 흔히 일간이라고 하는데 일간을 중심으로 생년과 생월, 생시의 간지를 비추어 의미를 붙인다. 생년은 조상을, 생월은 부모를, 생시는 자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네 가지 격을 주로 지칭하는데 관운과 재물, 재주와 건강이다. 소위 정관격이니 정재격이니 하는 말들이 다 사주에서 일컫는 운명과 성격의 해석이다. 벼슬에 나아가고 싶은 소망과 재물을 얻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재주가 뛰어나다거나 식복이 있다거나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여덟 글자의 상호 관계가 아주 정밀하고 체계적이어서 명리학을 수리 천문학이라고도 한다.

반야월에 용한 점쟁이가 사는데 몇 달 전부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고 한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서 같이 자란 아이가 바로 그 점쟁이였다. 너무나 용하다고 해서 구미까지 소문이 퍼졌다고 한다. 점 잘 본다는 소문이 인터넷 카페에도 돌아다니는 걸 보니 용하기는 용한 모양이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그 점집에 식구들이 찾아갔다. 아는 처지라 예약도 없이 바로 대면할 수 있었다. 식구들 사주를 보며 이것저것 이야기를 한다. 대체로 전에 들은 얘기들과 비슷하다. 둘째가 곧 임용을 본다는데 어떻게 합격할 수 있을지 물어보니 대뜸 불합격이라 한다. 마침 둘째는 공부하러 가서 그 얘기를 듣지는 못했다. 아내와 큰애는 집으로 오면서 둘째에게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괜히 주눅이나 들게 할 수는 없었다. 합격이라고 하니 걱정 말고 열심히 공부나 하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는 열심히 준비해서 점쟁이 말과는 반대로 합격자 속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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