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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과 수필

수필 쓰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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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의환향은 아니지만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지인 청송으로 떠난 지 근 30여 년만이다. 경북 유수의 지역을 떠돌아다니다 나고 자라서 공부하며 젊은 시절을 보낸 고향 대구에 다시 돌아온 것이다. 비산동의 어느 교회당 앞집에서 태어나 동인동과 대현동을 거치면서 대학을 마쳤다. 외가는 대구 근방인 가창이고 처가도 칠곡이다 보니 순전한 대구 토박이라 할 만하다. 그런 대구로 다시 돌아온 것이 내게는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더구나 귀향으로 얻은 가장 큰 선물인 수필이 이제는 내 삶의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귀향이 준 선물은 또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가까운 친지들을 자주 만나게 되고, 특히 어머니와 가까이 지내게 된 게 무엇보다 기쁘다. 남동생은 멀리 서울에서 여동생은 대구에서 나는 지방에서 떠돌다가 이제 대구로 오게 되니 어머니께서 무척 기뻐하신다. 행복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가까이 지낸다는 것이 모든 행복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물론 몇 년 지나면 다시 대구를 떠나야 한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대구 인근에서 근무할 작정이다.

 

출근을 하면서도 즐겁고 업무를 보면서도 어린 시절 신나게 뛰놀던 신천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대구로 다시 돌아와 보니 예전 친구들이 많이 반긴다. 초등학교 동기들은 17회라서 매달 17일에 모이고, 중학교 동기들은 두 달에 한 번 둘째 주 화요일에 만나고, 고등학교 동기들도 넷째 일요일이면 함께 모여 산행을 즐긴다. 대학 동기들은 졸업 후 꾸준하게 만나고 있었지만 요즘 들어 뜸하다. 워낙 친구들과 만나고 모임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요즘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바쁘고 즐겁다. 아마도 이제는 다시 대구를 떠나 이사 갈 일은 없으리라. 금호강이 앞에 흐르고 멀리 뒤에는 초례봉 너머 팔공산이 굽어 보이는 율하에서 정년을 넘어 남은 날들을 지내고 싶다.

대구는 사실 내 삶의 터전이기도 하고 성장의 발판이 된 곳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학창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고, 늘 귀소 본능 속에 귀향을 꿈꾸어 오던 곳이다. 그렇지만 이 도시가 보수적인 지향성으로 인해 지난날의 활기찬 역동성이 많이 사라져 여름 한낮의 무더위만큼이나 답답한 면이 많다. 다양성과 탈중심적인 성향으로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크게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과거 3대 도시에 속하던 대구가 이제는 그 명성을 인천에 내줄 정도로 많이 위축되었다. 막연한 애향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진정한 문화 도시로 거듭나도록 모두가 부지런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화 도시로 가는 길에 조그마한 보탬이 되는 게 바로 수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귀향의 설렘으로 불현듯 글이 쓰고 싶어 지던 무렵에 무작정 글밭길을 내디딘 게 귀향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전공이 국어라 해도 학창 시절에는 제대로 된 글 한 편 쓰지 못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도 작품 해설만 죽어라고 떠들어 대었으니 남아 있는 건 몇 구절 글 나부랭이들뿐이다. 겨우 몇 편의 수필을 써 놓은 정도지만 글쓰기가 이제는 내게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시경의 사무사(思無邪)라는 말은 수필에도 통한다. 1인칭 화자가 부르는 노래와 화자가 곧 주인공인 수필은 꾸밈과 서술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야기는 거짓이 있을지라도 노래에는 거짓이 있을 수 없다. 그만큼 수필은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마음의 노래인 것이다. 그러기에 문단의 말석에 밀려나 있는 수필이 이제는 제자리를 찾아 우리 삶의 진정성을 깨우치는 국풍이 되어야 한다.

한 편의 시와 같은 수필은 우리 모두의 로망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시처럼 수필을 쓰자는 것은 아니다. 노래가 지니고 있는 삶의 진실성을 드러내며 마음의 정취를 일깨워 주는 그런 수필이 명작이 아닐까? 피천득의 ‘인연’을 읽으며 느끼는 아리아리한 감성과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에서 밀려오는 알싸한 감동은 아무에게서나 쉽사리 얻을 수 있는 보물이 아니다. 내면에 감추어진 감동을 구체적인 사상(事象)으로 그려내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장르가 수필이 아닌가 한다.

올해가 가기 전에 힘찬 날갯짓으로 하늘을 나는 붕새처럼 마음껏 수필의 세계를 날고 싶다. 흔히 20대에는 시, 30대에는 소설, 40대에는 희곡, 50대에는 수필을 쓰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필은 삶의 연륜이 쌓여야만 쓸 수 있는 품격의 장르인 성싶다. 읽는 이의 마음을 파고드는 명작이 아니라 할지라도 내 마음을 그리는 진솔한 수필을 제대로 한번 써 보는 게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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