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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자율성과 보편성

수필 쓰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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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라는 장르가 역사적으로 오래전부터 비슷한 형식(고전 기행문, 잡설, 가전체, 가사 등)이 존재해온 것에 비하면 상당히 푸대접을 받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날 수필은 아직 문학의 변두리에 머물며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제4의 장르로 구분되기는 해도 문학의 3대 장르에 밀려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선 상에 놓여 있는 어정쩡한 정체성으로 인해 문학으로서의 입지가 확고하게 구축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 상황에서 수필이 제 몫을 다하는 문학의 한 장르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수필로서의 자율성과 보편성을 획득해야 된다고 본다.

그러면 수필의 자율성과 보편성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먼저 자율성 측면에서 살펴보면 수필의 창작 과정에서 어떠한 편견이나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감정이나 의지에도 휩쓸리지 않는 수필가의 온전한 자율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시와 소설과는 달리 수필은 작중 화자와 필자가 일치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에 수필 작품 속의 나는 항상 수필가와 동일하다. 이 원칙을 저버리고 새로운 가상의 화자를 내세운다거나 관찰자 입장에서 숨어버린다면 수필로서의 존재 가치가 부정되므로 결국 작품 속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자율적 주체로서의 수필가가 지녀야 할 근본적인 특성이 바로 자율성이 아닌가 한다.

수필은 바로 이러한 자율적인 수필가의 창작물이기에 수필의 자율성을 논한다면 수필가의 자율인으로서의 특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나 자신이 수필의 중심에 서야 하고, 대상에 대한 서술에 있어서도 필자가 대상을 보는 견해와 태도가 드러나야 한다. 사실 어느 한쪽에 속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사상이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항상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변모해 가는 자세가 필요하지만, 자율성을 지닌 수필가로서 우뚝 서지 않는다면 작품 속의 나는 초라한 화자로 전락하고 만다.

인류 문화 발전의 원동력은 누구에게나 보편타당한 가치를 전파한 데서 비롯되었다. 마찬가지로 문학예술에 있어서도 보편성은 작품의 존재 가치를 드높이는 주요한 특성이 아닐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고 설득력 있는 내용을 담는 것이 보편성이 아닌가 한다. 소위 ‘말이 되는 글’이 되어야 한다. 수필 작품의 내용에 있어서 보편성을 획득해야만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서 자리매김이 가능하다. 작품의 내용이나 주제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다거나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에 빠져있다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들 것이다. 대상을 살펴볼 때도 자신의 편견과 고집을 버리고 최대한 대상 그 자체에 몰입하여 거기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어 발굴하는 것이 보편성을 얻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오랫동안 독자들의 심금을 울려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은 언제나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인 글이지만 대상에 대해 철저히 몰입하고 통찰한다면 그 내용은 생명을 지닌 작품으로 탄생한다. 엄밀히 얘기하면 보편성이란 수필가의 노력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 자체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자율적 시선으로 깊이 있게 통찰한 결과를 작품으로 창작해 낸다면 보편성은 자연스럽게 얻어질 것이다.

그런데 사실 이 자율성과 보편성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되어 있는 특성이다. 수필가가 지니는 자율성과 작품이 가지는 보편성은 어느 한쪽만으로는 좋은 작품을 창작해낼 수가 없다. 자율성이 인간이 타고난 원래의 본성에 따라 인위적 이념이나 작위를 배제한 상태를 지향하고, 이러한 자율성에 바탕을 두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작품이 만들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보편성도 획득되리라 여겨진다.

‘어떤 수필이 좋은 수필인가?’라는 글에서 김태길 교수는 ‘남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풍부하고 매력적인 필자의 정신세계가 있고, 그것을 탁월한 문장력으로 그렸을 때 진실로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수필이 생긴다.’라고 하며, ‘오직 세상과 자기 자신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자신과 세계를 깊이 있게 자율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수필 창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율성과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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