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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수필 이야기

수필 쓰기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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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논어 위정편에 '시경의 시 삼백 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라고 했으며, 양화편에서는 '시는 가히 흥을 일으키고 살피게 하고 사람을 모이게 하고 하소연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더구나 계씨편에서는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고까지 하였다. 성경에도 시편이 있고 문학 장르의 기원이라 여겨지는 고대 희랍의 작품들은 모두 다 시의 형태를 띠고 있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저술하기도 했다. 이처럼 시는 인류 문명이 꽃을 피우던 시절부터 중요한 언술 행위의 하나로 중시되었다.

대체로 정형적인 운율에 바탕을 둔 운문으로서 이어져오던 시가 자유시의 형태를 갖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자유시는 1880년대 프랑스에서 일어난 자유시 운동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시인들에 의해 20세기 초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근대적인 자유시의 형태는 불과 100여 년 전부터 보편화되었고, 그 이전에는 일부 상당히 어려운 정형률을 가지고 있어 아무나 함부로 향유하기는 쉽지 않았다. 물론 자유시의 형태가 되었다고 해서 쉽게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계층의 독점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장구한 연원을 지닌 운문으로서의 시에 비해 수필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물론 넓은 의미의 수필을 모두 포함하거나 용어의 유래를 따지면, 12세기 남송의 홍매가 쓴 '용재수필'과 16세기 후반 몽테뉴의 'The Essays' 를 수필의 기원으로 삼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교술 장르를 수필로 본다면 고려말의 가사를 수필의 기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수필에 국한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1910년대에 태동하여 1930년대부터 본격적인 수필 장르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수필이기에 아직은 정체성을 확립한 확고한 장르로 자리매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수필을 창작하고 향유하는 수필 인구가 상당하기에 현대문학의 한 갈래로서 그 존재감이 적지는 않다.

수필은 흔히 그 명칭에 따라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개념이 상당히 퍼져 있다. 오늘날 매년 수천 편에 이르는 수필 작품들이 수많은 간행물을 통해 발표되고, 수백 명의 수필가들이 등단하고 있기에 수필에 대한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서정 장르로서의 시와 서사 장르로서의 소설 그리고 극 장르에 속하는 희곡(연극)과는 달리 수필은 3대 장르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근대 이후에 나타난 다양한 언술들 특히 수필과 같은 글들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헤겔에 의한 3대 장르(서정-주관적, 서사-객관적, 극-주객관적)를 벗어나 제4의 장르 설정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새로운 장르 분류로는 자이들러의 교훈 문학과 조동일의 교술 장르가 대표적이며 루트코프스키도 예술적 태도와 관련하여 4분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면 제4 장르로서의 수필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조동일에 의하면 시와 수필은 자아와 세계와의 교류면에서 일맥상통하며 소설과 희곡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보여준다고 한다. 다만 시는 외부 세계가 내적 자아의 영역으로 전환되어 들어오는 것이고 수필은 내적 자아의 세계화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작자의 개입 여부에 따라서도 시는 화자로 설정될 뿐 외부 세계의 개입이 없고 수필은 필자가 작품 속에 개입하고 있는 면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수필의 개념이 너무 넓다 보니 온갖 형식의 글들이 다 수필이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문학과 비문학의 구분선 아래에서 수필의 범주를 설정해야 한다. 문학의 한 장르로서 그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도 수필은 다른 세 장르에 버금가는 문학적 특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시와 수필은 다 같이 1인칭 화자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범주에 속한다. 한 편의 시 속에서 독백하거나 속삭이는 화자는 비록 시인의 분신이기는 하지만 수필 속에서 언술하는 화자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1인칭 시점의 소설은 보다 수필에 가까울 수도 있고, 1인극에서 이루어지는 언술들은 시나 수필의 범주에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시는 형상화와 비유를 통한 언어 표현에 치중하고 수필은 사실과 느낌을 주로 지시적 언어로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시와 수필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시적 세계는 창조된 세계이며 수필적 세계는 현실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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