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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사랑

에세이 마당

by 전하진(全夏辰) 2020. 8. 1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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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자전거를 하나 장만했다. 물론 내 평생의 첫 자전거는 아니지만 결혼하고 난 이후 아이들이 아닌 내 자전거로는 처음이 아닌가. 그것도 내게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것으로 마련했으니 무척 사랑스럽다.

“당신 꼭 애들 같아. 귀여워 죽겠어.”

새 자전거를 사도록 마지못해 결재한 아내의 첫마디다. 보름이나 걸려서 아이들과 아내의 동의를 구한 결실이라 더 뿌듯하다. 처음에는 지금 있는 자전거도 많은데 무슨 자전거냐고 핀잔만 주더니만, 자전거로 운동 삼아 금호강 자전거길을 매일 다니겠노라는 공약(?)에 겨우 허락을 받았다.

새 자전거로 나서는 첫 라이딩이다. 헬멧을 쓰고 아파트를 나와 강변 자전거길을 따라 죽 내려가면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밤이 시작되는 어둠이 앞을 가리지만 쌍라이트로 환하게 밝히며 가는 길이 눈에 익숙하다. 아양교를 지나 공항교까지 갔다 오는 왕복 20킬로를 가뿐하게 달린다. 역풍을 받으며 힘겹게 돌아오면 어느새 땀이 이마를 적시며 한결 시원해진다.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라이더들과 오가며 인사를 나누면 마음까지 어느새 가벼워진다.

자전거 타기를 시작한 건 어릴 적부터다. 어려운 살림이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고 자전거라도 타고 다녔다. 동네 한 바퀴 휘돌아오는 재미로 틈만 나면 자전거를 꺼냈다. 중학생이 되어 학교가 멀어지자 버스 편도 없고 해서 자전거 통학을 했다. 십리 길을 입학 선물로 받은 산뜻한 새 자전거로 싱싱 달리는 기분이 아주 상쾌했다. 신천을 따라 죽 올라가면 맑은 공기가 가슴을 씻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며 무리를 지어 동인 로터리까지 내려왔다. 그때의 자전거 군단은 아직도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자전거 타기가 늘 신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가끔은 수난을 겪기도 했다. 어렸을 때 가까운 친척이 사는 신동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왜관까지 가다가 그만 체인이 망가져서 갔던 길을 되돌아 고장 난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온 일도 있었다. 개인 승용차가 거의 없었던 초임 시절 포항에 근무할 때에는 자전거로 시내에 나갔다가 한잔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전봇대와 부딪혀 큰 낭패를 보기도 했다. 어제 세워 둔 자전거가 아침에 일어나 보면 깜쪽같이 사라진 일도 있었으니 평생을 자전거와 더불어 고락을 같이 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은 자전거도 각양각색이다. 예전에는 일반 자전거 아니면 화물 자전거뿐이었지만 이제는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산악자전거, 사이클용 자전거, 생활자전거, 올마운틴 자전거, 다운힐 자전거, 미니벨로, 픽시 자전거, 하이브리드 자전거 등등 이루 다 나열하기도 어렵다. 4대강 자전거길 완공으로 국내 자전거 인구는 이제 1,300만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제껏 마이카 시대를 살면서 잊고 지냈던 자전거가 다시 내 마음을 붙든다. 웰빙이 유행을 이루는 요즘에는 친환경이 대세다.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는 자연과 함께하는 더없이 좋은 친구가 아닌가. 자연을 벗 삼아 생각에 잠기며 달리는 자전거 라이딩은 몸과 마음을 북돋우게 하는 자양분이 아닐 수 없다.

고대 수메르인들이 발명한 바퀴를 이용해서 처음 자전거 형태의 목마를 만든 이는 18세기 말 프랑스 귀족이었고, 이를 실용화하여 특허를 낸 독일의 드라이스가 자전거의 아버지로 불린다. 이렇게 발명된 자전거는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체인과 페달, 공기 타이어 등이 개발되어 현재의 자전거로 발전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때쯤 자전거가 들어와서 오늘날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두 사람의 천재성이 여러 수많은 대중들을 이끌어 간다는 말이 자전거에도 통하고 있으니, 아직 진정한 노벨상 수상자를 얻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새삼 창의성 교육의 부재가 마음에 걸린다.

자전거는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열린 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서면 온 동네가 다 내 세상이다. 마주치는 이웃과 인사도 건네고, 처음 보는 사람들도 정감이 간다. 강변의 나무들은 싱싱함을 자랑하고, 지저귀는 새 소리도 마음을 살찌게 한다. 늘 다니던 길이지만 자전거로 달리면 돌멩이 하나도 다 내 거 같다. 스쳐 지나가는 차창 밖이 아니라 내가 화폭의 주인공이 되는 한 폭의 풍경화가 만들어진다. 삶의 고단함도 잊어버리고, 하루의 피곤함을 씻어내는 청량제로서도 손색이 없다. 자전거는 닫힌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노을 지는 강변 자전거길을 달리다 보면 내 마음은 어느새 동화의 세계로 빠져 든다.

최근에 금호강변 자전거길이 제법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낙동강 강정보까지의 이정표도 생겼다. 구형 자전거로 10㎞를 달리고부터 보름 만에 새 자전거로 20㎞를 넘어섰고 이제는 30㎞도 가뿐하게 달린다. 다음 목표는 강정보까지 갔다 오는 길이다. 아마 왕복 70㎞가 넘을 것이다. 상당한 준비와 허벅지 단련이 목표 달성의 관건이다. 4대강 자전거 종주 인증제가 생기고부터 대장정을 마무리한 라이더가 몇 천 명이라 하니 초보 라이더로서는 부러움이 한 짐이다. 앞으로 언젠가 내 목에도 영광의 인증 메달을 걸 날이 반드시 오리라.

자전거 라이딩은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한 희망과 사랑의 체인이다. 오늘도 나는 금호강 자전거길을 따라 새벽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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